영화 '버닝(이창동 감독)'의 해미와 배우 전종서(25)의 공통점은 '날 것'을 숨기지 않고, 숨길 수 없고, 굳이 숨기고 싶어 하지 않다는데 있다. 이창동 감독이 충무로를 넘어 전 세계가 주목하는 8년만의 신작 주인공으로 전종서를 선택한 이유 역시 '버닝'을 통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몰랐기에 더 잘 해낼 수 있었던 시간이다. 전종서에게 '버닝'은 무지에서 시작된 도전이었다. 그는 '버닝' 프로젝트에 대해 몰랐고, '거장' 이창동 감독에 대해서도 몰랐다. 영화인에게 '꿈의 무대'라 불리는 칸 영화제 역시 함께 한 이들과 현장 밖에서도 다시 한 번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던 순간일 뿐이다.
대중과의 첫 인사는 '출국길 태도 논란'으로 삐그덕거렸지만 전종서는 당당하게 "다름을 인정해 달라"고 말했다. 검열에 임할 자세는 충분히 돼 있지만 당장의 이슈를 돋보기로 확대시켜 보고싶은 마음은 없다고. "평생 배우를 할 것이다"는 말은 하지 않아도 "연기를 너무 사랑한다"는 말은 여러 번 강조한 전종서다. 근래 보기드문 독특한 배우의 발굴이다.
- '버닝' 왜 했나. "지금 소속사를 만나 계약을 하고 3일도 안 됐을 시기에 오디션을 봤다. 회사에 들어오자마자 봤던 첫 오디션이었다. 난 선택을 받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감독님의 영화고, 상대 배우가 누구고'라는 것까지는 파악할 수 없었고, '왜'라는 것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생각해 본적이 없다. '난 신인이니까 당연히 오디션을 봐야하고, 앞으로도 계속 봐야 한다'는 마음만 있었다. 그냥 '버닝'이라는 작품이 있다는 것만 알았을 때였다."
- 언제 '버닝'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게 됐나. "심층적인 오디션을 보는 과정에서 '버닝' 프로젝트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총 6~7번 정도 본 것 같다. 알고 계시는 전형적인 오디션 분위기는 처음 딱 한 번이었다. 인물 조감독님을 상대로 했던 오디션에서 연기를 보여드렸고, 그 이후는 대화 형식의 미팅같은 자리였다."
- 어떤 연기를 했나. "'케세라세라'라는 드라마에서 정유미 씨가 했던 대사를 했다. 극중 정유미 씨가 맡았던 역할은 아저씨를 좋아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순수한 감정으로 진솔한 대사를 친다. '배추가 김치가 돼 가는 과정'을 '사랑'에 비유한 대사인데 그 감정이 잘 맞을 것 같아 연기했다."
- '합격 연락'을 받았을 땐 어땠나. "미팅이 계속 진행되고 있던 상황이었고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시간이 계속 길어지다 보니 진짜 합격 발표를 기다리는 것처럼 마음이 복잡해졌다. 이미 난 '합격을 하더라도 이럴 것이다, 합격을 하지 못하더라도 이럴 것이다'는 마음의 준비가 돼 있는 상태였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합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정말 좋았지만 그 감정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걱정되고 염려되는 부분도 많았고 설레고 궁금하기도 했다. 복합적이었다."
-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모두 챙겨봤나. "아주 오래전에 '밀양' 한 편을 봤다."
- 이창동 감독은 어쨌든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거장이다. "솔직히 말하면 난 감독님에 대해 잘 몰랐다. 오디션 과정에서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주고 받았는데, 내가 감독님에 대해 받았던 느낌은 아버지 같은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감독님이라기 보다 선생님 같고, 아버지에 가까운 분이라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굉장한 어른이기도 했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대화가 많이 이뤄졌기 때문에 '이 분은 감독님이고 어려워 해야 할 상황이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주지 않으셨다." - 첫 현장이 행복했겠다. "맞다. 배려와 존중을 너무 너무 많이 해 주셨다. '내가 이 감독님을 통해, '버닝'을 통해 무언가를 얻겠지, 어떻게 되겠지'라는 기대는 생길 수 없는 현장과 상황이었다. 그저 과정 자체가 즐거웠고 행복했다는 말씀 밖에는 드릴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 이창동 감독의 디렉션은 어땠나. "'저라는 애' 자체에 대해 이해를 해 주시는 분이었다. 내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하고 표정을 짓든지 어떤 상황에서든 다 허용이 됐다. 감독님의 디렉션은 '네가 하고싶은대로 해라'였다. 상황에 대한 인지가 정확하게 돼 있고, 그것에 대해 알 수 있게 시뮬레이션을 하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