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 손승락(32)은 팀에서 가장 마지막에 마운드에 오르는 마무리 투수다. 공 하나에 동료들이 경기 내내 애써 만들어 놓은 승리가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을 알기에 더욱 신중하게 공을 뿌린다. 책임감 만큼 심리적인 부담도 클 수밖에 없다. 화려하지만 외로운 자리이기도 하다. 잘 할 때는 많은 칭찬을 들을 수 있지만, 부진할 땐 온갖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중요한 자리임에는 틀림없다.
올해로 마무리 투수 5년차인 그에게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느냐고 묻자 "아내와 산에 간다"고 답했다. 산을 오르내리는 동안 아내와 계속 대화도 나눈단다. 손승락은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이야기를 하고, 산에 올라가 마음을 정리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산에서 내려오면서는 또 웃고, 다 털어낸다. 마인드 컨트롤에는 '아내'가 답인 것 같기도 하다"며 웃었다.
그는 지난 7일에도 아내와 서울 관악산에 올랐다. 6일 NC전에서 시즌 두 번째 블론세이브를 하고 난 다음날이었다. 손승락은 "그날은 아내가 갑자기 산에서 소리를 질러 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애써 표현하지 않아도 남편의 답답한 마음을 아내는 모두 헤아리고 있었다. 손승락은 "'산에서 다 내려놓고 가자'고 하더라. (마음 속에) 묵은 건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아' 라고 한 번 크게 외치고 왔다. '아'에 모든 게 느껴지지 않았겠나"라고 말했다.
아내 덕분에 이번에도 마음의 짐을 털고 산을 내려올 수 있었다.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아내에게 고맙고, 또 미안한 마음이 크다. 손승락은 "아마도 아내는 다음에 다시 태어나면 야구 선수랑 결혼을 하지 않을 것 같다. 운동 선수가 이런 건 줄 몰랐을 거다. 특히 마무리 투수는 만나지 않을 것 같다"며 웃었다. 아내에 대한 미안함의 표현이다.
마무리 투수로 전향한 2010시즌 이후 매년 두 자릿수 세이브를 기록하며 꾸준한 성적을 낸 그는 지난해 46세이브를 올리며 데뷔 후 최고의 활약을 보여줬다. 올 시즌을 앞두고는 더 많은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시즌 개막 후 열흘 동안 4경기에 나와 2세이브를 올리는 동안 2번의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그는 "왜 또 다시 굴곡이 올까라는 생각도 해봤다"고 털어놨다. 주저앉기보다는 2번의 블론세이브를 더 강해지는 '계기'로 삼기로 했다. 손승락은 "또 다시 시련이 와도 끝까지 견뎌야 하지 않겠나. 그게 프로다"고 말했다. 자신의 다짐을 결과로 보여주고 있다. 그는 지난 8일부터 7경기에 나와 6⅓이닝 5피안타 1볼넷 4탈삼진을 기록하며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21일 현재 8세이브로 이 부문 1위에도 올라 있다.
그는 다시 태어나도 마무리 투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손승락은 "이왕에 할 거면 어려운 걸 하는 게 좋지 않나. 무난하게 사는 것보다 이런 걸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어떤 것'이 마무리 투수에게는 있다. 마무리 투수를 하면서 인생도 배우고 있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야구를 그만두면 이 시절이 가장 그리울 것 같다. 마무리 투수를 했을 때 가장 행복했다는 생각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