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 시즌 2위 SK는 넥센과 펼친 플레이오프(PO)에서 최종전까지 가는 혈전을 치르며 여력을 소진했다.
5차전에서 1·2선발 김광현과 메릴 켈리를 모두 써야 했다. 한국시리즈(KS)에서 고전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1위 두산에 거듭 한발씩 앞섰다. 1·3·5차전을 승리하며 먼저 3승을 챙겼다. 두 번째 승리까지는 강점인 화력으로 만들었다. 세 번째 승리는 투타의 조화 속에 홈런 없이 해냈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6차전에서도 5-4로 재역전승을 거두며 2018시즌의 주인공이 됐다. 8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뒀다.
단기전은 기세 싸움이다. SK에 상승 요인이 많다. 일단 PO 5차전에서 끝내기홈런으로 승리하며 업셋을 허용하지 않았다. PO 3차전까지 침묵하던 한동민, 정규 시즌에 제 몫을 하지 못했던 베테랑 김강민과 박정권이 주도한 결과다. 극적인 요소가 있었다. 좋은 기운이 KS에서도 이어졌다. 수비가 불안했던 유격수 김성현은 5차전에서 상대 선발 세스 후랭코프를 무너뜨리는 2루타를 치며 만회했다. 약점으로 지목된 불펜진은 김태훈과 정영일의 선전이 두드러졌다.
트레이 힐만 감독의 자진 사퇴 표명은 악재로 전망됐다. 하지만 오히려 선수단을 뭉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 10일 열린 KS 5차전은 그의 홈구장(행복드림구장) 고별전이라는 의미가 부여됐다. 선수단에도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SK팬은 경기가 끝난 뒤 지난 두 시즌 동안 강팀 디엔에이(DNA) 회복에 기여한 지도자를 향해 뜨거운 응원을 보냈다. 힐만은 "눈물을 참았다"며 화답했다.
외인은 복덩이다. 4번 타자 제이미 로맥은 겪어 보지 못한 뜨거운 열기에 고무됐다. 3차전 MVP(최우수선수)로 선정된 뒤 "더욱 기운이 나는 이유다"고 했다. 3차전에 선발로 나선 메릴 켈리는 "인천에서 치르는 3연전 첫 경기였기에 더 중요했다. 4차전 선발 김광현에게 좋은 기운을 이어 주고 싶었다"고 했다. 가을 무대를 대하는 외인 선수의 자세도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결정적인 차이는 부담감을 대하는 마음가짐이다. 두산이 우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던 시리즈다. 14.5게임 차로 정규 시즌에서 우승한 팀이다. 그러나 5차전까지 좀처럼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강점인 수비는 헐거워졌고, 누군가 해결사로 나서며 인정받았던 뒷심은 흔들렸다. 4번 타자 김재환의 부상 이탈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김태형 감독도 특정 투수 공략에 거듭 실패하는 상황에 대해 묻자 "아직도 선수들이 경직된 것 같다"고 했다. 당연하게 여겨지던 우승이지만 예상과 다른 양상 때문에 당황한 기색이다.
SK는 다르다. 선수들은 "5차전에서 패할 수도 있었던 경기를 극적으로 이긴 덕분에 좋은 기운이 생겼다"고 입을 모았다. 힐만 감독은 "1승 뒤 1패가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도 선수단이 침착함을 유지했다. 코칭스태프는 선수들을 잘 지원하고 있고, 베테랑은 경기에 나서지 않더라도 중요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고 전했다. "모두 선수들 덕분이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실제로 베테랑 김강민은 "예상대로 되지 않는 게 포스트시즌 무대다"며 업셋 달성을 향한 의지를 드러냈다. 당연히 후배들에게 귀감이 됐다. 불펜 에이스로 거듭난 김태훈은 "큰 경기지만 워낙 팀 분위기가 좋다 보니까 나도 긴장이 크지 않다"고 했다. 김성현은 "플레이오프부터 치렀다. 선수단에 '우승하자'보다 '축제를 즐기자'는 마음이 자리 잡은 것 같다. 상대적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를 치르는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했다.
PO 혈전은 최종 무대를 위한 예방주사가 됐다.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도 긴장감을 털어 냈다. 경기 전 훈련, 경기 뒤에도 여유가 엿보인다. SK는 원래 KS 경험이 많은 팀이다. 평정심까지 갖추고 경기에 임하다 보니 최소한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 가을, SK가 단기전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는 선수단의 합심과 긍정의 힘이라는 것을 다시금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