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KBO 한국시리즈(KS)는 10년 만에 두산과 SK가 재회한 무대로 관심을 모았다.
두 팀은 2007년과 2008년 KS에서 2년 연속 맞붙은 당대의 라이벌이었다. 2000년대 후반 SK가 연이은 우승으로 '왕조'를 구축했다면, 최근에는 4년 연속 KS에 진출한 두산이 최강자였다. 이런 배경 덕에 두 팀의 포스트시즌 엔트리에는 1년에 한 명밖에 안 나오는 KS MVP 출신 선수가 나란히 두 명씩 포진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팀이 우승하지 않아도 받을 수 있는 정규 시즌 MVP와 달리, KS MVP는 혼자 힘으로는 따낼 수 없는 타이틀이다. 현역 생활 내내 우승을 한 번도 못 해 보고 은퇴하는 선수가 많은데, 여기서 KS MVP까지 경험하는 것은 하늘이 점지해야 가능한 일이다. 과거 KS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하늘의 별 따기'에 성공한 MVP들이 지금까지 조명받는 이유다.
한 번 받기도 어려운 KS MVP를 두 번이나 수상한 선수는 지난해까지 단 네 명만 나왔다. LG 김용수(1990·1994년) 해태 이종범(1993·1997년) 현대 정민태(1998·2003년) 삼성 오승환(2005·2011년). 모두 KBO 리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간판선수들이다.
김용수는 역대 최초 KS MVP 2회 수상자로 기록됐다. 1990년 KS에서 선발, 1994년 KS에서 마무리를 각각 소화하면서 일군 업적이라 더 대단하다. 1990년에는 1차전과 4차전에 모두 선발투수로 나서 4승 가운데 2승을 따냈다. 14이닝 동안 자책점은 2점뿐. 완벽한 MVP였다. 두 번째 수상이던 1994년엔 4경기 가운데 3경기에 등판해 1차전 구원승과 3·4차전 2세이브를 올렸다. 3차전과 4차전 모두 1점 차 터프 세이브. 총 8⅓이닝을 던지면서 단 1점도 내주지 않았다.
해태 전성기를 이끌었던 이종범은 '바람의 아들'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플레이를 펼쳤다. 1993년 KS 타격 성적은 타율 0.310(29타수 7안타) 4타점으로 평범했지만, 도루를 무려 7개나 하면서 상대 배터리와 내야를 교란했다. 무엇보다 우승팀을 결정지은 7차전에서 4타수 3안타 2도루로 펄펄 날았다. 이종범은 1997년에도 3차전 연타석홈런을 포함해 3홈런 4타점 2도루로 맹활약했다.
1998년 MVP인 정민태는 1차전과 4차전에 선발 등판해 2승을 챙겼고, 총 3경기에서 17⅔이닝을 던져 평균자책점 0.51을 기록했다. 실점이 단 1점뿐이다. 기자단 투표에서 유효 투표수 50표 가운데 49표를 쓸어 갔을 만큼 이견이 없었다. 정민태는 5년 뒤인 2003년 KS에서도 1·4·7차전에 세 차례 선발 등판해 모두 승리투수가 되는 기염을 토했다. 심지어 7차전은 완봉승으로 장식했다. 총 21⅓이닝을 던졌는데 자책점은 4점. 평균자책점이 1.69였다.
오승환은 신인이었던 2005년 KS 4경기 가운데 3경기에 등판해 총 7이닝을 던졌다. 1승 1세이브 평균자책점 0. 큰 무대에서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 '돌부처' 신화의 출발점이었다. 두 번째 MVP를 수상한 2011년에는 이미 KBO 리그 최고 마무리 투수로 올라선 뒤였다. 5경기 가운데 팀이 이긴 4경기에 모두 나와 3세이브를 따냈다. 5⅔이닝 8탈삼진 무자책점. 심지어 1차전에서는 2점 차, 2차전과 5차전에서는 1점 차 살얼음판 승리를 각각 지켰다.
KS MVP를 뽑을 때는 얼마나 더 열심히 오래 뛰었는지보다 얼마나 더 결정적인 활약을 했는지가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표심에 특히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역시 결정적인 홈런 한 방이다. 1982년 초대 KS MVP의 주인공인 OB 외야수 김유동이 그랬다. 6차전에서 역대 최초 KS 그랜드슬램을 터뜨렸다. 타율 4할에 홈런 3개로 12타점. 시리즈 후반인 5차전과 6차전에서 홈런 세 방을 몰아친 덕분에 더 깊은 인상을 남겼다. 6차전 완투승을 거둔 에이스 박철순을 MVP 투표에서 눌렀다.
심지어 롯데가 우승한 1984년에는 1·3·5·7차전을 완투하면서 전무후무한 KS 4승을 올린 고 최동원이 KS 타율 0.143(21타수 3안타)를 기록한 유두열에 밀렸다. 유두열은 7차전에서 '황금 박쥐' 김일융을 상대로 우승을 확정하는 역전 결승 3점포를 터뜨려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정규 시즌 27승을 올린 최동원이 페넌트레이스 MVP를 사실상 확보했다는 점도 이유가 됐다.
2009년 역시 비슷했다. MVP는 역대 유일무이한 KS 7차전 끝내기 결승홈런을 터뜨린 KIA 나지완에게 돌아갔다. 그는 6차전까지 홈런 없이 단 3안타만 쳤을 정도로 부진했지만, 7차전에서 KS 역사상 가장 극적인 한 방을 날리면서 다른 모든 선수의 활약을 잊게 했다. 이외에도 2002년 6차전에서 시리즈 끝내기홈런을 친 삼성 마해영, 2008년 3차전에서 결승홈런을 날린 SK 최정, 2012년 1차전에서 결승포를 쏘아 올린 삼성 이승엽이 모두 홈런의 힘으로 MVP에 올랐다.
2000년 KS에선 현대 외국인 타자 톰 퀸란과 두산 외국인 타자 타이론 우즈가 나란히 홈런 3개씩을 때려 내면서 치열한 MVP 대결을 펼쳤다. 결국 가장 중요한 7차전에서 홈런 2개와 2루타 1개로 6타점을 올린 퀸란이 팀 우승과 함께 MVP가 됐다. 우즈는 이듬해인 2001년 6경기에서 홈런 4개를 몰아치면서 한을 풀었다. 우승 확정 경기였던 6차전에서 비거리 145m짜리 역전 장외홈런까지 날려 표심에 쐐기를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