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FA(프리에이전트) 최대어로 분류되는 양의지는 한국시리즈(KS)에서도 가치를 증명했다. 시리즈 결과와 상관없이 두산을 이끄는 안방마님으로 고군분투했다. 공격과 수비에서 모두 중추적인 역할을 해 줬다.
타석에서 빈틈이 없었다. KS 6차전까지 팀이 기록한 안타 53개 중 약 17%인 9개를 혼자 책임졌다. 장타율(0.450)과 출루율(0.556)의 합인 OPS가 무려 1.006. 상대 투수들이 쉽게 승부를 걸지 못할 정도로 정확도가 대단했다. 최주환(타율 0.478 안타 11개)과 함께 타선을 이끄는 쌍두마차였다. 4번 타자 김재환이 KS 3차전을 앞두고 외복사근 부상으로 이탈한 뒤에도 4·5차전에서 각각 멀티히트, 6차전에선 3타점을 기록하며 흔들리지 않았다.
시리즈 첫 4번 타자로 기용된 4차전에서 4타수 2안타로 활약하며 2-1 승리에 힘을 보탰다. 5차전에선 팀 내 유일하게 멀티히트를 때려냈다. 박건우와 오재일이 극심한 부진에 빠진 것과 상반됐다. 도루까지 2개를 기록했으니 말 그대로 퍼펙트 타자에 가까웠다. 이종열 SBS Sports 해설위원은 "양의지는 스윙이 빠른 타자가 아니다. 눈으로 보기에도 느리다. 하지만 준비 동작이 빨라 먹히는 타구가 없다. 기술에 심리적인 부분이 함께 결합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치가 빛난 것은 수비다. 노련하게 투수를 리드했다. SK 코칭스태프에서 놀랄 만한 프레이밍을 계속 보여 줬다. 스트라이크존에 걸치는 공을 미세한 미트 움직임으로 유리하게 가져갔다. 움직임이 심한 컷패스트볼(이하 커터)이나 투심패스트볼을 주로 섞는 조쉬 린드블럼과 세스 후랭코프는 양의지의 리드 속에 안정감을 이어 갔다. 4차전에선 린드블럼과 함께 커브를 섞는 레퍼토리로 재미를 봤다.
KS 1차전에서 직구를 54개나 던졌지만 4차전에선 19개로 절반 이상 줄였고 대신 커브를 늘려 타격 타이밍을 빼앗았다. 예상을 깬 '커터+커브' 조합이었다. "커브를 많이 던지고 싶다"고 한 린드블럼의 의사를 받아들였다. 2차전에선 함덕주와 배터리 호흡을 맞춰 8회 김동엽을 상대로 체인지업 연속 5개 사인을 냈다. 결과는 대성공. 직구를 노리고 잔뜩 힘이 들어간 타자를 역으로 이용해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냈다. 함덕주는 경기가 끝난 뒤 "(양)의지 형만 믿고 던졌다"고 했다. 이 위원은 "이번 시리즈에서 타자에 따라서 패턴을 완전히 바꿨더라. 양의지가 전체적으로 팀의 중심인 게 맞다"고 평가했다.
두산은 SK를 상대로 ‘업셋’을 허용했다. 현행 포스트시즌 제도가 시작된 1989년 이후 KS 직행 팀이 우승을 놓친 건 1989년 해태(2위) 1992년 롯데(3위) 2001년과 2015년 두산(이상 3위)에 이어 역대 다섯 번째. 그러나 양의지의 활약은 인상적이었다. 팀 전력의 반이라는 평가가 아깝지 않은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