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오재일(30)은 요즘 '오늘'만 산다. '내일'은 머릿 속에 없다. 왜 이렇게 말할까.
오재일은 지난 주까지 타율 0.400, 4홈런, 15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타격 2위이자 출루율 2위(0.488), 그리고 장타율 1위(0.643)다.
시즌 초반의 기세가 아주 무섭다.
4번 타자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고 있다. 외국인 타자 닉 에반스마저 밀어냈다. 에반스가 타격 부진으로 2군에 가도 두산 타선에 구멍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오재일의 활약 덕분이다.
그는 "요즘에는 타석에서 주저 없이 방망이를 돌리려 한다. 감독, 타격코치께서 늘 주문하던 부분"이라며 "점점 잘 맞은 타구가 나오며 자신감도 생긴다. 그래서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오랜 시간 '유망주'로 불리기만 했다. 기대도, 기회도 적지 않게 받았다. 그러나 한 번도 자신의 능력을 꾸준히 보여준 적은 없다. 활짝 피기 직전에 지고 만 꽃. 그게 오재일이었다.
올해는 마음가짐부터 다르게 출발했다. 오재일은 "그동안 시즌 초반에 조금 페이스가 좋다고 스스로 기대를 많이 했다가 실망한 일이 너무 많았다. 이번에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올해는 늘 눈앞의 한 경기만 생각한다. 오늘 경기는 오늘로 끝, 내일 경기는 내일로 끝일 뿐"이라고 했다.
무서울 정도로 안타를 몰아쳤던 4월 초반의 기세는 조금 사그라들었다. 스스로도 "지금은 처음보다 조금은 감이 떨어진 상태"라고 했다. 그러나 더 이상 속수무책으로 슬럼프에 빠지지 않는다. 5월의 첫 경기였던 1일 광주 KIA전에서는 상대 왼손 에이스 양현종을 상대로 시즌 4호 솔로홈런도 때려냈다.
한때는 왼손 투수에게 너무 약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제 그 약점마저 극복하고 있다.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타격하고,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는다. 그는 "밸런스가 괜찮은 것 같다. 페이스가 조금 떨어지긴 했어도 아직 잘 맞고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걱정은 고민을 부르고, 고민은 자신감을 떨어뜨린다. 지금의 오재일은 타격 기술만 좋아진 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한 단계 성장했다. 더 이상 홈런에 들뜨거나 실수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저 "매일 내 역할만 해내면 된다", "눈앞의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마음을 다잡을 뿐이다.
평정심을 찾았더니 표정부터 편해졌다. 그런 오재일에 대한 감독과 동료들의 신뢰도 점점 커진다. 오재일은 "아무래도 지금은 정신적인 부분에서 안정을 찾으면서 좀 더 편하게 타격할 수 있는 것 같다. 앞으로도 기록이나 성적에 신경 쓰지 않고 하루하루 내 몫을 하는 데 신경 쓰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