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철(34·LG)이 23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전에서 데뷔 12년 만에 역전 만루 홈런을 터뜨렸다. 팀이 0-3으로 뒤진 4회 1사 만루에 타석에 선 그는 상대 선발 홀튼의 4구째 시속 134㎞ 가운데 몰린 슬라이더를 받아쳐 경기를 뒤집는 그랜드 슬램으로 연결했다. 큰 포물선을 그린 타구는 115m를 날아 좌측 펜스를 넘겼다. 시종 KIA에 끌려가던 LG는 9번타자 포수의 홈런을 발판으로 4회에만 3방을 몰아 내며 대거 9득점에 성공했다. 지난 22일 후반기 첫 경기에서 역전패 당한 쌍둥이 구단이 챙긴 통쾌한 승리였다.
무려 12년이 걸렸다. 동의대를 졸업한 그는 2004년 SK에 입단했다. 하지만 박경완 등 거물 포수에 가려 2군만 지켰다. 2012년 이후 야구 인생에 활력이 붙기 시작했다. 그해 5월 넥센으로 이적한 그는 개인 최다인 81경기에 출전했다. 이듬해에는 전유수와 맞트레이드로 LG 유니폼을 입었다. 그리고 서른 다섯이 된 올해 데뷔 후 처음으로 주전 포수가 됐다. 단 한번도 풀타임으로 1군을 소화한 적이 없었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양상문(53) LG 감독의 믿음도 힘이 됐다. 부임 후 투수력 향상을 목표로 잡은 양 감독은 외국인 투수에게 "포수의 리드를 조금 더 따르는 것이 어떻겠느냐"며 최경철에게 힘을 실어줬다. 만년 무명선수였던 그에게 "요즘 타석에서 자신감이 엿보인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윤요섭을 함께 출전시키며 무더위에 지친 안방마님의 체력을 안배했다. 지난 18일에는 감독 추천으로 생애 첫 올스타전에 나서 번트왕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수장의 지원을 받고 연일 맹타를 휘두루고 있다. 최경철은 양 감독의 취임 후 가진 첫 경기였던 지난 5월13일 잠실 롯데전에서 5회 말 결승 솔로포를 선물했다. 2004년 데뷔 이후 3660일 만에 터진 홈런이었다. 더울수록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최경철은 지난 22일에는 2회 초 1사 만루에 재치있는 스퀴즈 번트를 성공시키며 감독을 흐뭇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