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사랑스럽다'는 것을 안다. 대화를 나누면 나눌 수록 "언니!"라는 친근한 호칭을 절로 터지게 만든다. '호감'을 주고 받을 줄 아는 배우. 꽃길을 넘어 비단길이 깔린 이정은(49)의 앞날엔 그래서 응원만 가득하다.

이정은과 한 번이라도 작품을 해 본 이들은 좋은 이야기를 더 해주지 못해 안달을 낸다. 최근 선보인 영화 '기생충' 팀도, JTBC '눈이 부시게' 팀도 이정은에 대한 반응은 한결 같다. 좋은 사람은 계속 찾기 마련이다. 봉준호 감독과 김석윤 PD의 페스소나로 자리매김한 이유가 곧 이정은이다. 이정은은 "저야 불러주시면 언제든 기꺼이 달려가죠. 그 모습을 좋게 봐주신게 아닐까 싶어요"라며 또 한 번 겸손함을 표했다.

1991년 연극 '한여름밤의 꿈'으로 데뷔해 28년간 한 길만 걸었다. 차근차근, 묵묵히 내비쳤던 그 존재감을 올해의 백상은 알아봤다. 어떤 부문보다 경쟁이 치열했던 제55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조연상이다. 호명된 순간을 회상한 이정은은 "김혜자 선생님 수상만 내심 바라면서 참석한 자리였거든요. 전 생각도 안 했죠. 이름이 불렸는데 어안이 벙벙했던 것 같아요. 너무 떨리니까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말도 잘 안 나오더라고요."라며 여전히 떨리는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수상의 기쁨은 '겸손'으로 돌아왔다. '선배님처럼 되고 싶다'는 후배들의 축하 문자에 행복함을 느끼면서도 '더욱 겸손하게 연기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기생충'이 공개된 후 '세계 1등 연기'라는 극찬도 쏟아졌다"고 하자 이정은은 손사레부터 치며 "전 오히려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부끄러웠고요. 리얼함을 좀 더 살렸어야 하는데 잔재미만 살린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좋게 봐 주시는건 너무 감사하죠"라고 거듭 고마움을 전했다.

오로지 연기가 좋아 버텼던 시간이다. 연출도 경험했고, 예능에도 잠깐 모습을 비췄지만 최우선은 연기다. 연애도 놓은지 오래. "반함이 있어야 하는데 어째 죄다 친구 아니면 동생으로만 보이네요"라며 워커홀릭의 길을 자청했다. 이미 내년 상반기까지 빼곡하게 채워진 일정이다. 이정은에게는 단순한 열일이 아닌 약속이고, 책임이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스케줄? 몸을 열 개로 만들 이정은이다.

칸영화제의 분위기를 슬쩍 잇기 위해 프랑스 전통 요리에 와인까지 한 상 차려놨지만 이정은의 애착 음식은 매운 떡볶이. 박수를 짝짝치며 공감할 수 밖에 없는 고급진 소울푸드다. 본격적인 수상길이 열렸고, 트로피도 쌓일 일만 남았다. 내년 백상을 기약하며 "다음엔 떡볶이 맛집으로 안내하겠다"는 기분좋은 약속까지 거들자 이정은은 "인기와 주목도는 평생 가지 않는다는걸 잘 알아요. 결국 제가 하기 마련이죠. 하던대로 하다 보면 다시 좋은 일이 있지 않겠어요?"라며 시원스레 웃어 보였다. 

 

-1991년 연극 '한여름 밤의 꿈'을 통해 데뷔했죠. 데뷔 28년 차가 됐네요.
"잠깐잠깐 1년 정도 쉰 거 빼면 벌써 그렇게 됐네요. 허리 디스크 때문에 활동이 어려웠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보전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어요. 체중을 줄여야 하는데 먹는 것 자체를 좋아해서 쉽지 않아요."
 
-무명시절이 길었는데 어떻게 견뎠나요.
"영화배우가 되려고 버틴 게 아니라 연기가 좋아 버텼고 그 선함과 노력을 사람들도 보고 느낀 것 같아요. 감독님과 스태프들이 현장에서 좋아하고 그런 좋은 모습이 소문 나고 그렇게요. '기생충'에서 나의 신랑이었던 박명훈 씨가 좀 잘 됐으면 좋겠어요. 활개를 치고 지면으로 올라왔는데 정말 잘 됐으면 해요."
 
-공연 연출에 대한 욕심은 아직 있나요.
"아뇨? 절대요.(웃음) 연극을 제작했다가 망한 적이 있어요. 그때 큰 빚을 졌고 경동시장에서 일했어요. 그 이후로 공연 제작이나 연출은 절대 안 한다고 다짐했어요. 절대 안해요. 그건 타고나야 하는 것 같아요. 거대한 숲을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한 것 같은데 그런 재능은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지금 하는 일에 죽이되든 밥이되든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쉼이 없는 것 같아요.
"대부분 작년에 찍은 작품이라 방영 시기가 겹쳐서 그렇지 한 5개월 쉬었어요. 주변에서 너무 많이 하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꽤 많이 놀았어요. 허리 디스크가 있으니 보전하는 방법을 찾으며 스케줄을 짜려고 노력해요."
 
-쉴 때 무엇을 하나요.
"쉴 때는 강아지 데리고 동네 산책해요. 동네 이모나 고모처럼 그러고 돌아다녀요. 얼굴 가릴 일이 별로 없어요. 설령 아는 척 해도 아직까진 편해요. 근데 너무 유명한 것도 힘들겠더라고요. 남주혁 씨랑 제주에 갔었는데 여기 저기 사람들이 사진 찍자고 하니. 물론 난 젊은 스타도 아니고 초상권에 걸릴 일도 없으니 사진 찍는 게 어렵진 않죠."
 
-연애는 안하고 있나요.
"마흔 다섯부터 일에 쭉 집중했는데 지금도 그런 상황이에요.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반함이 있어야 하는데 다 동생 같고 친구 같아요. 언젠가 그런 감정이 다시 오지 않겠어요. 약간 우울감이 있는 얼굴형을 좋아하는데 주변에서 그런 게 인생 망치는 거라고 하더라고요.(웃음) 해피하고 긍정적인 사람을 만나야 할 것 같아요."

 

-예능에 대한 욕심은 없나요.
"4년 전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적이 있어요. 황석정 자체도 보통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 아닌데 힘들어하더라고요. 난 그런 에너지가 없어요. 강아지랑 아무말 없이 있을 때도 있는데. 예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녹화량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이 없어요. 연기가 좋은 것 같아요. 예능은 남에게 웃음을 주고픈 욕구가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편하게 얘기하는 예능은 괜찮은데 그러면 얼마나 보는 사람이 재미 없겠어요."
 
-tvN '인생술집'에 출연해 배우 신하균, 지진희, 우현 씨에게 고마움을 전했죠.
"방송 끝나고 따로 연락은 없었어요. 물론 그때 그 일에 대해 다시 언급하는 사람도 없죠. 신하균, 지진희 씨는 워낙 바쁘니까 잠깐 마주친 거 빼고 따로 만난 적은 없어요. 작품 안에서 만날 일도 크게 없었어요. 하지만 늘 그 사람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은 챙겨 봐요. 내가 힘들 때 손을 내밀어준 사람들이기에 평생 응원해야 할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우현 오빠는 OCN '구해줘2' 현장에 놀러 가서 봤는데 진짜 웃기더라고요."
 
-우현 씨의 경우 '눈이 부시게'에서도 함께했죠.
"마지막에 대학생 장면 너무 웃기지 않았나요. 현장에서도 빵빵 터졌어요. 영화 '1987' 속 경찰청장 역을 맡으면서 완전히 달라진 이미지를 보여줬는데, 오빠의 많은 가능성을 보여준 좋은 제안이었다고 생각해요. 희극적인 이미지만이 아니라 다른 이미지로도 쓰일 수 있어 기쁘다고 하더라고요. 쓰임이 많아진 것 같아 곁에서 볼 때 뿌듯했어요."
 
-OCN '타인은 지옥이다' 작업은 잘 진행 중인가요.
"정해진 데드라인이 있어서 빠르게 진행 중이에요. 감독님이 속도감 있게 찍고 대본도 빨리 빨리 나오는 편이에요. 웹툰하고 다른 에피소드나 인물의 전사가 있는데 웹툰을 봤던 분들이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대로 나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뚜껑을 열어봐야 할 것 같아요. 근데 뭐 나만 잘하면 될 것 같아요. 후배들이 정말 잘하더라고요. (임)시완 씨 덕에 잘 될 것 같아요."

-다음 행보는 어떻게 되나요.
"계획을 잘 세우지는 않는데 약속은 잘 지키려고 노력해요. 내년 상반기까지 작품이 잡혀 있어요. 약속이 된 것이라 쭉 작품을 할 것 같아요. 내겐 약속 완결이 제일 중요해요. 책임감을 가지고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연경·황소영 기자
사진·영상=김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