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이 캔 스피크(김현서 감독)'가 누적관객수 300만 명을 돌파했다. 추석시즌 '범죄도시(강윤성 감독)', '남한산성(황동혁 감독)', '킹스맨: 골든 서클(매튜 본 감독)'과 맞붙어 일궈낸 알짜배기 성과다.
흥행보다 더욱 값진 것은 쏟아진 호평이다. '일본군 위안부 소재를 상업영화로 영리하게 풀어냈다'는 공통적 평가를 기본으로 심금울린 배우들의 연기력, 적재적소에 유머를 녹여낸 김현석 감독의 센스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이들도 상당하다.
김현석 감독은 2014년 CJ문화재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시나리오 기획안 공모전 당선작 '아이 캔 스피크' 시나리오를 받은 후 쳐낼 것은 쳐내고 더할 것은 더하면서 자신만의 스타일로 각색, 현재의 영화를 탄생시켰다. 재능과 진심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좋은 예다.
그저 아프고 고통스럽기만 했던, 그렇게 다뤄기지만 했던 역사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상처를 이렇게도 접근할 수 있다는 것, 보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아이 캔 스피크'는 김현석 감독의 자랑스러운 필모그래피로 자리매김 하게 됐다.
※인터뷰②에서 이어집니다.
-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은 김현석표 개그라고. "요즘으로 치면 '아재 개그'라고 하던데 전후 맥락을 생각하면 그냥 재미있지 않나?(웃음)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이 직접적으로 웃기다기 보다는 그런 농담을 전혀 안 할 것 같은 민재가 툭 던지는 설정이 웃긴 것이다. 실제 이제훈과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가만히 있어도 일치하는 지점이 있더라."
- 배경음악까지 작정하고 노린 줄 알았다. "이문세 씨 노래는 원래 넣을 생각이 없었다. 비싸기도 하고.(웃음) 근데 유명하지만 꽤 오래 전 노래라서 그런지 어린 관객들 중에는 모르는 분들이 꽤 있는 것 같더라. 혹시 몰라 편집본에 가이드로 넣어봤는데 윗선에서 '넣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넣자고 한 것 아니다. 그러니까 예산 추가해 줘라'라고 당당하게 어필했다."
- 5.18 민주화운동 소재를 담은 '스카우트' 때부터 유머와 감동을 접목시키는데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내심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근데 만들다 보니 '스카우트'와는 많이 다르더라. '스카우트'는 내가 광주 출신이다 보니 마음 편한 구석이 있었다. 근데 위안부 소재는 5.18과는 또 다른 문제이자 슬픈 역사 아닌가. 뒤늦게 두렵더라."
- 그럼에도 뚝심있게 밀어 부쳤다. "여러 리스크를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너무 까불지 말자'고 스스로와 다짐하기도 했다. 눈 앞의 이익에 쫓겨 웃기려고 치면 더 웃길 수도 있었을텐데 톤 조절에 공을 들였다. 마침 내가 그 동안 했던 코미디들도 한 박자 늦은 코미디라 본의 아니게 취향이 저격됐다."
- '택시운전사' 흥행과 함께 '스카우트'도 주목 받았다.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10년 전 죽은 자식이 살아 돌아온 느낌이었다. 정말 이상하게 위로가 되더라.(웃음) 이 기회에 많은 분들이 다시 봐 주셨으면 좋겠다. 후회하진 않을 것이다."
- 최근 위안부 관련 영화들이 많아졌다. "우리가 관심이 없었을 뿐 목소리는 꾸준했다. '아이 캔 스피크' 소재도 무려 10년 전 이야기 아닌가. 영화 자막을 보면서 '어머, 이거 실화였어?'라고 다시 생각하는 관객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아마 90% 이상의 사람들이 매번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뭔지 알아. 그런 것 있었지' 그 정도에서 끝날 것이다. 잘못 됐다는 것이 아니다.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언급하면, 때마다 알고 기억해주면 된다. 나처럼 또 민재처럼. 내가 시장 상인이 될 수도 있고, 내 이웃이 피해자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것에 대한 미안함이 늘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 같다."
- '귀향'이 정공법이라면 '아이 캔 스피크'는 우회적이라고 표현된다. "'귀향'을 봤다. 근데 '귀향'을 만든 감독님은 나와 출발선부터 다르더라. 인권운동 하시던 분이 영화를 만든 것 아닌가. 나눔의 집 봉사도 15년을 하셨더라. 부끄럽지만 난 날라리처럼 살다가 이번 작품을 하면서 처음 가 봤다. '귀향' 감독님과 비교될 수가 없다. 알지만 모르고 살았던 입장이다. '잘한 것 없지만 이제라도, 이제라도 잘 하겠습니다'라는 마음을 담았다."
- '아이 캔 스피크'를 시작으로 접근 방식이 다양해질 것 같다. 긍정적 효과다. "문제가 가벼워질 수는 없다. 그렇게 될 수도 없고 되서도 안 된다. 다만 접근 방식은 조금 더 쉽고 편해져 문제 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위안부 문제는 이미 장기전이다. 할머니들 조차 '아베는 절대 사과 안 할 것이다'고 하신다. 하지만 우리는 받아내야 마땅하다. 다음 세대를 위한 작은 노력으로 봐 주셨으면 감사하겠다. 민규동 감독이 '허 스토리'를 만든다고 하던데 역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