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정'이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미쟝센. '스파이물'이라는 장르적 선입견을 과감하게 깨부순 김지운 식 접근은 '밀정'의 한국 영화사에서 길이 기억되고 기록될 가장 큰 이유다.
김지운 감독은 혼돈의 시대에 나라를 잃은 인물들의 복잡한 감정선과 적과 동지를 오가는 복합적인 관계를 흥미진진하고 밀도 있게 그려내는 것은 물론,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한 스파이 영화'라는 시도를 통해 스타일과 품격을 높였다.
스파이물이라고 해서, 밀정이라고 해서 쫓고 쫓기는 관계에 집중하기 보다는 '왜 이 사람이 밀정이 될 수 밖에 없었는가'라는 원초적 질문을 던지며 애초 시선 자체를 달리했다.
때문에 빠르고 자극적인 영화에 적응된 일부 관객들은 '큰 반전이 없다', '속도감이 높지 않다'는 평을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밀정'이 추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고스란히 받아들인 관객들에게는 '인생 영화'라 꼽아도 손색없을 정도의 완성도를 자랑했다.
미술 뿐만 아니라 음악까지 재즈풍으로 이어지면서 김지운 감독 특유의 디테일함이 살아났다는 것도 관객들에게는 반색할 부분이었다. 물론 김지운 감독은 "내 스타일을 많이 내려놨다"고 밝혔지만 덧셈 뺄셈을 명확하게 해낸 탓에 '독특함'을 담아낼 수 있었다.
김지운 감독은 "반어적이면서 감각적인 느낌이 함께 녹아 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특히 음악을 선택할 때는 더 고심했다. 관객들이 내가 이 음악을 쓴 이유를 알아줬으면 싶었고 뻔하지 않기를 바랐다. 뒤의 감정을 강화시키기 위함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노력은 해외에서도 통했다. '밀정'은 제73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를 비롯해 제41회 토론토 국제 영화제, 제49회 시체스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런던아시아영화제에 초청, 제89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외국어 영화부문 한국 출품작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룩했다.
"단 1온스의 군더더기도 없는 완벽한 작품. 관객을 충족시킬 모든 오락적 요소를 갖췄다"(Variety), "장르 영화가 이토록 훌륭할 수 있다는 생각을 그 누구도 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김지운 감독은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에서 받은 완벽한 영감을 통해 끝내주는 재미와 정교하게 아름다운 장르적 시도를 해냈다", "애국심과 개인의 이기심이 강력하게 충돌하면서 벌어지는 내면의 갈등을 그려낸 스타일리시한 스릴러"(Washington Post) 등 해외 유력 매체의 찬사도 이어졌다.
김지운 감독은 "역사가 가르쳐주는 교훈이 있다. '무너지지 말자'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본 주제에 더 얹혀 놓고 싶은 이야기였다. 영화까지 희망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고 실패를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게 내가 만든 '밀정'이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