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은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고 타자다. KBO리그에선 삼성 유니폼만 입었다. 늘 삼성의 중심이었고, 국가대표팀에서도 그랬다. 야구를 잘 모르는 이들도 야구선수 '이승엽'이라는 이름은 안다. 2003년 56홈런으로 아시아신기록을 세웠다. KBO리그 통산 13시즌 동안 다섯 차례 홈런왕에 올랐다. 그의 기록을 일일이 다 나열하기조차 어렵다.
20대부터 '라이언킹'으로 불렸던 선수. 어느덧 '살아있는 전설'이 됐다. 그의 얼굴에서 파릇파릇 했던 젊은 시절의 느낌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여느 선수와 달리 40대 베테랑의 힘을 보여준다. 세월의 흐름만큼 그의 기록은 쌓이고 쌓여 점점 영글어가고 있다. 대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나가 아니다.
이승엽은 한일 통산 600홈런 달성 카운트다운 '-2'다. 23일까지 한국과 일본에서 598개 홈런을 쌓았다. 1995년 프로 데뷔 후 2003년까지 324개, 일본 지바 롯데-요미우리-오릭스를 거치며 8년 간 159개, 2012년 국내로 복귀한 후 115개의 홈런을 추가했다. 지난해 6월에는 KBO리그 최초 400홈런을 돌파했다.
정작 이승엽이 가장 애착을 갖는 기록은 한일 600홈런 보다 개인 통산 2000안타다. 23일까지 총 1987안타를 때려냈다. 그는 2014년 9월 본지 인터뷰 당시 "KBO리그 400홈런과 개인 2000안타를 꼭 달성하고 싶다"고 밝혔다. 앞으로 안타 14개만 추가하면 2000안타 고지를 밟게 된다. 또 1389타점으로 1타점만 더 보태면 양준혁(전 삼성, 1389타점)을 넘어 역대 개인 최다 타점 1위로 올라선다.
아마도 이승엽이 계속 한국에서 뛰었다면 수 십년은 누구도 넘보지 못할 숱한 대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이승엽은 "기록은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다. 남은 시즌 부상 없이, 팬들께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시즌을 마무리 한다는 생각 밖에 없다"고 말했다.
-요즘 날씨가 굉장히 덥다. "전혀 힘든건 없다. 지명타자니까 괜찮다.(웃음)"
-대기록 달성이 눈앞이다. "한일 통산 600홈런은 별로 의식하지 않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통산 2000안타를 더 생각하고 있다. 홈런은 안타의 연장선이다. 홈런을 의식하면 괜히 슬럼프에 빠질 수 있으니까. 안타에 포커스를 두고 콘택트하고 있다."
-개인 통산 2000안타까지 올 시즌 내 충분히 달성 가능한 페이스인데. "그건 모른다. 내일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 게 야구다. 그래서 긴장이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시즌 마지막 타석까지 부상 없이 팀에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돼야한다는 생각으로 타석에 임하고 있다."
-요즘 홈런 손맛은 좀 다를 것 같다. "그렇다. 기분 좋은 홈런이 많다. 스윙이 좋았다."
-개인적으로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한일 통산 600홈런의 의미는 커 보인다. "공식 기록이 아닌 비공식 기록 아닌가. 그냥 혼자 좋아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웃음)"
-일본에서 8년 간 선수 생활을 포함한 기록이다. 이런저런 추억이 떠오를 법 한데. "물론 그렇다. 혼자서 한국과 일본에서의 기록을 합쳐보기도 한다. 안타가 몇개일까? 타점이 몇개일까? 계산해 보니 기록이 좀 되더라. 뿌듯하다. 한국과 일본을 합치면 2500안타가 넘으니까. 그래도 비공식이다."
지난 6월 스즈키 이치로(마이애미)가 미·일 통산 4257안타를 때려냈다. 피트 로즈의 메이저리그 최다 안타기록(4256개)과 비교가 되며 논쟁이 붙었다. 당시 이승엽은 "공식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해 아쉽겠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스스로의 목표를 달성했고, 본인이 '세계에서 안타를 가장 많이 친 타자'라는 자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누가 뭐래도 이승엽은 대한민국 최고 홈런타자로 남을 것이다.
-한·일 통산 600홈런이라면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질 수밖에 없다. "개인적이 값어치는 있다. 내가 이 나이까지 야구를 할 것이라고 상상하지도 못했다. 지금 이 순간, 이 나이에 야구하는 게 좋다. 감사한 사람도 많고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불혹의 나이지만 3년 연속 20홈런을 쳤다. "많은 분들이 말한다. 일본에서 실패한 뒤 (한 수 아래로 평가받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이렇게 활약하는 것 아니냐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공감할 순 없다. 야구는 분위기와 흐름이 중요하다. 일본 시절 막판엔 나 자신이 분위기가 침체됐다. 삼성으로 돌아와 재미있는 야구, 행복한 야구를 하고 있다. 야구장에 나오고 싶다. 분위기가 달라져 성적이 좋아질 수 있는 거다."
삼성 입단 22년 만에 새 구장으로 옮긴 이승엽은 지난 3월 "이제 야구만 잘하면 된다"고 했다. 낙후된 옛구장 환경 때문에 팬서비스를 제대로 못해 아쉬웠다고 했다.
-새 구장에서 팀 성적이 좋지 않다. "더 잘해야 되는데, 책임감도 느낀다. 프로인 만큼 팬들에 대한 의무와 책임감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팀 성적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래서 팬들께 미안하다. 더운 날씨에도 새 구장을 많이 찾아 응원해주시는 분께 더 좋은 모습, 플레이를 보여드려야 하는데… 야구가 마음먹은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모든 선수가 다 잘 할 것이다. 그런데 마음대로 안 될 때가 많다. 선수들도 굉장히 힘들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점을 조금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
-예전부터 KBO리그 개인 통산 400홈런과 2000안타 달성을 현역 시절 달성하고 싶은 목표 두 가지로 꼽았었다. 이승엽에게 어떤 의미인가. "개인 2000안타는 파워와 정확성을 겸비했다는….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개인적으로 최단 기록 의미 등에 의미를 많이 둔다. 한국에서 14시즌째 뛰면서 다른 선수들보다 빠른 시간 내에 기록을 달성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올 시즌을 돌아보면. "많이 아쉽다. 더 잘했어야 하는데. 시즌 중에 허리가 안 좋아서 두 달 가량 고생했다. 몸 관리에 소홀하지 않았나라는 후회도 든다. 비시즌 동안 열심히 한다고 준비했는데 생각보다 몸이 약해졌고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올 겨울엔 훈련보다 휴식, 많이 먹기 보단 좋은 음식을 섭취하는 쪽으로 포커스를 바꿔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개인 2000안타 달성한 뒤에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될까? "글쎄. 개인 목표는 별로 없을 것 같다. 나이가 좀 더 어렸다면 통산 3000안타를 향해 달리겠지만. 이제 내게 주어진 시간은 200경기가 채 남지 않았다. 그 안에 할 수 없는 기록이기 때문에 이쯤에서 접어두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