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이상의 결과물은 배우에게도 그리고 관객들에게도 뿌듯함을 느끼게 한다. 배우가 존재하는 첫 번째 이유는 단연 연기력.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출중한 연기를 선보인 배우는 결코 밉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언젠가 한 번은 볼 것이라 예상했던 박희순(42)의 '망가짐'이다. 데뷔 26년 만이다. "기다렸던 시나리오다"며 스스로도 흡족해 할 만큼 영화 '올레'(채두병 감독)는 박희순에게 기회이자 도전이었다. 파격 펌 헤어에 음담패설, 음주에 가무까지 안 하는 것이 없다. 박예진과의 결혼 이후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지만 변화의 이유가 결혼은 아니다.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 여전이 연기에 대한 고민이 한 가득이라는 박희순이 오랜만에 마음껏 까불었다.
※인터뷰 ②에서 이어집니다.
-실제성격은 어떠한가. 수탁과는 많이 다를 것 같은데.
"어느 술자리가 있으면 꼭 말 없이 앉아있는 두 사람이 있는데 그게 신하균과 나였다. 맨 마지막까지 맨 정신으로 남아 뒷치닥거리까지 다 하는 스타일이었다.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었고 말 자체를 별로 안 한다. 신하균도 마찬가지다. 근데 신하균은 마이크만 없으면 말을 잘 한다. (웃음)."
-신하균과는 통하는 부분이 많았겠다.
"그런 사람끼리 만나니까 오히려 다른 곳에서는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해지게 되더라. 이번에도 함께 작품을 하면서도 너무 좋았다. 정말 편했고 더 편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오만석 같은 경우는 과거 무대 위에서 더 많이 만났다. 내가 영화 쪽으로 오면서 관계가 조금 소원해 졌는데 다시 만나 반가웠다."
-박희순을 바라보는 신하균과 오만석의 시선이 정 반대더라.
"오만석은 뮤지컬을 해서 내가 까부는 것을 볼 수 있었지만 신하균은 맨날 술자리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있는 것만 보다가 까불기 시작하니까 색달랐던 모양이다."
-본인은 세 캐릭터 중 어떤 인물에 더 가까운가.
"굳이 따지자면 은동이 아닐까? 연극할 때 선배님들과 술을 마시거나 회식이 있으면 늘 차렷 자세로 긴장한 채 앉아 있었다. 그게 버릇이 돼 영화 쪽으로 와서도 오랫동안 그렇게 살았다. 근데 나이를 먹으니까 그게 너무 지치더라. 나도 술 마시고 놀고 싶은데.(웃음)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놓기 시작했다. '나도 좀 챙겨 봐!'라는 마음이다. 요즘엔 좀 편하게 먹는데 습관 때문인지 뭐 하나 문제가 있다 싶으면 바로 술이 깬다."
-현장에서 유일한 유부남이었다. 신하균은 싱글들이 몸 관리도 더 열심히 하고 자신을 위해 바쁘게 산다고 하던데.
"뻥치시네! 같이 즐겨놓고 늘 혼자만 살겠다고 저런다. 하하. 싱글이고 유부남이라서 달랐던 부분은 없다. 현장을 즐기는 마인드는 아마 다 비슷할 것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난 어떤 현장에서든 스태프들과 친해지는 것이 더 좋다. 배우들이야 언제든 만날 수 있지만 스태프는 마지막일 수 있지 않냐. '이제 좀 서로 알았구나' 싶으면 촬영이 끝나니까. 그래서 몇 년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이번에 잠깐 특별 출연한 '밀정' 현장에 갔는데 대부분 아는 스태프들이더라. 전혀 낯설지 않아 편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
-종종 함께 술을 마시는 사모임도 있나.
"글쎄. 요즘은 박예진이랑 가장 많이 먹고.(웃음) 대부분 같이 작품하는 동료들과 먹는 것 같다. 늙은이들이랑만 마셔서 젊은이들이 없다."
-이번에는 현장에서 술을 많이 마셨다고.
"원래 내가 잘 붓는 스타일이라 촬영할 때는 술을 안 마시는 편이다. 근데 이 영화에서는 내가 신하균보다 잘생기게 나오면 안 되지 않냐. 그래서 엄청 마셨고 부은 채 연기했다. 좋게 봐 달라."
-제주도는 어땠나.
"두 작품과 뮤직비디오를 통해 제주도와 인연을 맺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도 제주도에 자주 가는 편이었다. 결혼 전에는 결혼 전이기 때문에 (박예진과) 외국으로 여행을 가면 괜히 눈치가 보여 제주도를 갔다. 제주도는 그냥 국내 여행 같은 기분 아니냐. 제주도에서 숨어 있었다.(웃음)"
-신혼생활은 어떤가. 스스로 가정적인 스타일이라 생각하나?
"둘 다 배우이기 때문에 한 명이 일 할 땐 다른 한 명이 청소하고 빨래하고 그런다. 집안 일은 서로 나눠서 하고 있다. 가정적인건 내 생각에는 그런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아재라는 호칭은 어떤가.
"나쁘지 않다. 친근한 느낌이 있다. 되게 유행에 못 따라가는 것 같고 비어보이는 것이.(웃음) 꼰대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다. 꼰대는 왠지 고집스럽고 자기 주장이 강한 느낌인데 아재는 아니지 않나.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