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위원회(KBO)도 적극 검토해야 할 것.” 메이저리그가 추진 중인 2루 슬라이딩 관련 규칙 개정에 대한 김인식 KBO 규칙위원장의 견해다.
메이저리그 커미셔너 사무국은 현재 선수노조와 빠르면 올 시즌부터 적용될 규칙 개정을 논의 중이다. 더블플레이를 막기 위해 주자가 수비수를 향해 다리를 높게 드는 슬라이딩을 금지하자는 취지다.
미국 야구의 전통주의자들에게는 탐탁치 않은 일이다. 과거 이 플레이는 남성다움과 투쟁심의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스파이크 징을 쇠줄로 갈고 경기에 임했다는 타이 캅의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산업 규모와 선수 연봉이 상승함에 따라 ‘위험한 플레이는 금지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메이저리그 규칙위원회가 2013년 홈플레이트 충돌방지 규정을 야구규칙에 신설한 건 그 연장선이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는 피츠버그의 강정호, 뉴욕 메츠의 루벤 테하다가 수비 도중 1루 주자의 슬라이딩에 걸려 다리 골절상을 입었다.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프로야구에선 이런 플레이가 드문 편이다. 김경문 NC 감독은 지난해 초 강정호에 대해 “국내에서 흔치 않은 높은 슬라이딩에 주의해야 할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올해 KBO 규칙위원회를 맡은 김 위원장은 “KBO리그에선 이런 플레이가 드물다. 하지만 선수를 보호하기 위한 규칙 개정은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도 강정호와 같은 부상은 흔치 않다. 하지만 한 번 나오면 선수 생명이 위협받는 대형 사고로 이어지기 쉽다”며 “빈도의 문제가 아니라 선수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식 야구에 익숙한) 외국인 야수가 늘어남에 따라 위험한 플레이가 나올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고 덧붙였다.
ESPN에 따르면 메이저리그에서는 주루 선상 바깥의 수비수에 대한 슬라이딩, 베이스를 넘어선 슬라이딩, 의도적으로 수비수를 노린 슬라이딩 등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규칙 개정이 논의되고 있다. 기존 야구규칙 체계에 따르면 이런 플레이는 수비방해에 해당한다. 방해를 저지른 주자에겐 아웃 판정이 내려진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보다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아웃 하나로는 약하다. 선수 생명을 위협하는 플레이를 금지하자는 취지이니 만큼 보다 강력한 페널티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지난해 테하다의 다리를 부러뜨린 체이스 어틀리(LA 다저스)에 대해 2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내린 바 있다.
KBO 규칙위원회는 올해 1월 5일 메이저리그의 뒤를 좇아 홈플레이트 충돌방지 규정을 신설했다. 일본 프로야구(NPB)도 올해부터 이 규정을 적용한다. 12개 구단 스프링캠프에 NPB 심판이 파견돼 새 규정에 따른 판정을 내리고 있다. 일본 언론은 “현장에서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어떤 규정을 만들든 처음에는 문제가 생긴다. 하지만 사고를 방지하자는 취지가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