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8일에 개봉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임순례 감독)'는 무엇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여주인공 김태리(혜원)가 고향으로 내려와 친구들과 사계절을 보내는 내용을 담은 영화다. 특별한 갈등 구조가 없다. 계절에 맞는 농산물을 기르거나 수확하고, 홀로 혹은 여럿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이야기가 전부다. 그럼에도 이미 개봉 첫 주 차에 손익분기점인 80만 관객 돌파에 성공했다. '리틀 포레스트'가 스크린 위에 그려 낸 소확행 매력이 관객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소확행은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파생된 단어다. 이 수필집에는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거나, 새로 산 정결한 흰색 셔츠를 입을 때 느끼는 행복을 소확행이라고 말하고 있다. 경기 침체에서 비롯된 젊은이들의 단어다. 일본발 신조어는 2018년 대한민국 청춘들을 대표하는 단어가 됐다. '리틀 포레스트' 속 김태리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된장국을 한입 먹을 때, 관객들은 대리 만족한다.
지난해 말에 개봉한 영화 '패터슨(짐 자무쉬 감독)'은 아트버스터(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둔 예술영화) 중 대표적인 소확행 영화다. '패터슨'은 패터슨이라는 도시에 사는 버스 기사 아담 드라이버(패터슨)의 반복되는 일상을 담았다. 영화는 시를 쓰는 취미를 가진 패터슨의 일상을 그의 시와 함께 그려 낸다. 우연히 만난 꼬마가 들려주는 시 한 소절, 매일 점심시간 공원에서 먹는 샌드위치 한 조각이 이 영화의 소확행이다. 갈등이라곤 전무하다. 118분이 단조롭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8주간이나 상영되며 롱런했다. 패터슨은 상업 영화보다 압도적으로 적은 스크린 수로 여러 작품이 경쟁해야 하는 치열한 영화 시장에서 놀라운 롱런을 이뤄낸 데다 6만5000명의 관객을 모으며 선전했다.
'소공녀(전고운 감독)'는 개봉 전부터 소확행 영화로 주목받았다.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가장 주목받은 작품 중 하나다. 영화는 집만 없을 뿐, 일도 사랑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현대판 소공녀 이솜(미소)의 도시 하루살이를 그린다. 집은 없지만 위스키 한잔, 담배 한 모금, 남자 친구 이 세 가지로 소확행을 실현하는 도시 청춘의 일상이 영화에 담겼다.
2018년에 개봉한, 혹은 개봉할 영화 중 100억원 이상의 제작비가 들어갔거나 들어갈 한국 영화는 10여 편에 달한다. 여전히 범죄 스릴러 장르가 선호되고, 많은 영화들이 후반 CG 작업에 큰돈을 들여 화려한 볼거리를 완성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중 손익분기점을 돌파한 작품은 이병헌 주연작 '그것만이 내 세상'을 제외하면 '리틀 포레스트'뿐이다. '리틀 포레스트'는 순제작비 15억원을 들인 영화다. 눈에 띄는 한류 스타가 출연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박스오피스 3위(18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에 머무르고 있다.
'리틀 포레스트'의 임순례 감독은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소재가 주를 이루는 요즘, 관객들에게 편안하고 기분 좋은 휴식 같은 영화를 선물하고 싶어 연출을 결심했다"고 밝혔고, 한 영화계 관계자는 "소확행 영화들이 범죄 스릴러물에 질린 관객층의 틈새를 노렸다. 현실에 지친 20, 30대 취향에 맞아떨어졌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