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41)의 얼굴이 달아 올랐다. "야구 외적인 얘기다"며 수줍게 첫 마디를 꺼낸 한 팬의 질문 때문이다. 좌중을 주목시킨 이 팬은 "피부가 너무 좋은데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는 의외의 한 마디를 건넸다. 이승엽은 "지금 기미 탓에 고민이 많다"고 답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이승엽은 20일 수원지방법원에서 마련한 '소통 아카데미'에 강연자로 초청됐다. 법원 구성원과 시민들에게 자신의 현역 시절 겪은 좌절과 환희의 순간을 전했다. 팬들에겐 생소한 얘기가 많았다. 겸손한 이미지를 내려놓고 "자만하던 시기가 있었다"고 했다. '국민 타자'라는 수식어는 영원하다. 하지만 스타가 아닌 사람으로 다가서려 한다.
강연 시작 시간(정오) 1시간 전부터 참석하려는 팬들로 가득 찼다. 삼성의 연고지 대구는 물론 땅끝 통영에서 발걸음을 하기도 했다. 구자욱이 언급된 건 강연이 끝난 뒤였다. 1시간 15분이 진행됐지만 일본에서 뛰던 시절까지 밖에 하지 못했다. 다음 일정이 있었고 얘기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팬들과 대화를 나눴다.
"묻고 싶은 얘기가 있으신 분은 말씀하시라"고 하자 여기저기서 거수하는 이들이 나왔다. 첫 질문은 바로 전날(19일) 행보와 닿아 있다. "해설자로 나설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 이승엽은 단호했다. "없다"고 했다. 이유가 있다. "공부를 많이 해야하는 자리다. 지금 지식만으로는 이내 밑바닥이 드러날 것이다"고 했다. 언급하진 않았지만 2018년에는 개인적으로 할 일이 있다고.
이승엽은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장학 재단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언론을 통해서도 알려진 이야기다. '하고 싶은 일'이 재단 관련 일인지는 모른다. 다만 엄연히 조직 생활을 하는 해설자를 병행하기 어렵다고 봤다. 이승엽이 "방송국에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말한 이유다.
이어 피부 얘기가 나왔다. 이승엽은 "일본 리그에서 뛸 때는 자외선차단제를 사용하면 이상한 시선으로 보더라. 2군 생활을 많이 한 탓에 피부가 망가졌다. 지금은 1년에 한 번 정도 관리를 받는다. 그냥 피부가 좋은 후배에게 물어보겠다"고 말했다. 이제 '팀 선배'는 아니지만 '단짝'으로 지내던 구자욱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팬들 사이엔 때아닌 경쟁이 붙었다. 한 여성팬이 "은퇴 투어를 할 때 기억에 남는 팬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자신이 의미 있는 선물을 했던 것. 다른 자리에 있던 남성팬이 자신이 준 '군번줄(군번이 적힌 인식표를 목에 걸 때에 쓰는 줄)' 상기시키자 이승엽은 "그 팬이 첫 번째다"고 했다. 질문을 한 여성팬도 자신의 선물 내용을 말하자 다른 팬도 나섰다. 훈훈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승엽은 자신에게 질문을 한 팬에게 사인공을 선물했다. 마지막 인사를 한 뒤에도 조촐한 팬 사인회가 이어졌다. 경기도 시흥시에서 자리를 찾은 한 팬은 "강연을 하는 모습을 처음 본다. 색다른 모습을 보여줘서 너무 고맙다"고 했다. 자신이 준비한 선물을 건네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국민 타자'의 인기는 '자연인'으로 돌아가서도 여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