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 공주의 20년 후는 '진행의 신'이었다. 방송인 박경림(39)이 올해 데뷔 20년을 맞았다. 23살이란 어린 나이에 방송가를 점령했다. 'MBC 최연소 연예대상'(2001)이라는 타이틀은 지금까지 깨지지 않았다. 손만 대면 터졌다. 연기도 하고 예능도 하고 노래도 불렀다. 불러주는 곳이 많았고 다재다능했던 박경림은 누구와 붙여놔도 빛을 발했다. 큰 성공을 맛봤던 터라 슬럼프의 늪에 빠졌을 때 공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산후 우울증까지 겹쳐 자존감이 낮아지기만 하던 때 자신과 같은 아픔을 가진 또래를 위로하기 위해 나섰고, 지금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위해 '리슨 콘서트' 준비에 한창이다. 공연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공식 질문입니다. 주량이 어떻게 되나요. "주량이 제로(0)에요. 술을 못해요. 그래서 항상 회식 장소나 뒤풀이 장소에서 분위기 띄우는 역할은 하는데 술을 먹는 자리에서는 죄송스러워요. 대신 주변에는 주당들이 많아요. 술자리가 주는 정겨움을 좋아하거든요."
-2015년부터 '토크 콘서트'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즐거울까?' 생각했어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어떤 사람이었는지, 뭘 좋아하는 사람이었는지, 무엇에 슬퍼하고 기뻐했는지 잊고 살았더니 내가 사라지더라고요. 산후우울증부터 시작해서 자아를 잃어간다는 상실감을 얘기하기 힘들잖아요. 어디 가서 소리 지르고 싶고 원 없이 울고 웃고 싶은데 그런 걸 못하니까 곪아가는 게 느껴졌어요. 내 또래에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이 다 같은 마음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토크콘서트를 시작한 거예요. 엄마들에게 특화해서 공연했죠."
-이번엔 '리슨 콘서트'로 이름을 바꿨죠. "'리슨 콘서트'는 스스로 20년을 되돌아보는 의미였어요. 20년 동안 내가 어땠나 생각해보니 '토커'로서만 활발하게 활동했더라고요. 상대방의 얘기를 오롯이 듣는 좋은 '리스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편견 없이 들어주는 게 쉽지 않잖아요. '얘기해, 들어줄게' 하다가도 '그건 아니지, 네가 이렇게 했어야지'라고 생각과 편견이 들어갔던 게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엔 듣는 게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춰서 기획했어요."
-'리슨 콘서트'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길에서 우연히 만난 분들부터 동사무소 직원, 이웃분들이 편하게 이야기를 해주세요. 충분히 듣고 싶은데 늘 시간에 쫓기다 보니까 마무리를 짓기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뭔지 생각하더라고요. 근데 어찌 보면 상대는 그냥 들어주길 원하는 걸 수도 있는데 나는 자꾸 뭔가를 해주려고 한 거예요. 그냥 들어주면 되는 건데요. 앞으로는 무조건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내 이야기를 아무 편견 없이 오롯이 들어줄 사람이 옆에 한 명만 있어도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거든요."
-콘서트도 콘서트지만 영화 행사에서 단연 '톱'이잖아요. "정정은 안 하도록 하겠습니다.(웃음) 너무 감사하게도 기회가 온 거죠. 영화 쪽에서 진행자로 선택해주는 거지 내게 선택권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개인적으로 영화를 진짜 좋아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좋아하는 영화도 보니까 진짜 좋아요."
-특별히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나요. "내 현실을 잊게 해주잖아요. 극장에 앉아있으면 2시간 동안은 시·공간을 초월해서 현실을 잊게 만들어줘요. 물론 현실로 돌아오지만 거기서 주는 영감이라든지 메시지가 오래가는 거 같아요. 슬프다, 기쁘다, 먹먹하다, 처연하다 등 감정이 오래 남아있는 장르라서 좋은 것 같아요."
-TV에 자주 안 보이니까 활동을 덜 하고 있는 줄 아는 분이 많죠. "실질적인 수입에 있어서는 예능을 많이 할 때랑 지금이랑 큰 차이는 없어요. 근데 예능인이잖아요. 예능도 많이 해야죠. 사실 내가 만들어야 하는 기회들이 있고 또 내게 주어지는 기회가 있는데 어떤 것이든 다 열려있거든요. 기회가 온다면 열심히 해야죠."
-방송에 대한 갈증이 있을 것 같아요. "지금 tvN '외계통신' EBS '행복한 교육세상'을 하고 있고 IPTV에서 영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지상파라든지 시청자들이 많이 볼 수 있는 곳에 안 나오니까 '얘는 뭐 하고 사나' '일 안 하나'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전이랑 비교하면 갈증이 있을 수밖에 없긴 한데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억지로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고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일을 놓지 않고 열심히 하다 보면 기회가 온다고 생각해요."
-결국엔 버티는 자가 승리하잖아요. "전성기가 또 오는 걸 바라진 않지만, 많은 분을 만날 수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그 사랑을 또 달라고 하는 건 욕심 아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