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를 공동 1위로 이끈 주역 중 1명은 외국인 에이스 에릭 해커(34)다. 해커는 올 시즌 14경기에 선발 등판해 7승2패 평균자책점 2.99를 기록하고 있다. 2점대 평균자책점을 유지하고 있는 리그 투수 5명 중 1명. NC 투수로는 유일하게 규정 이닝을 채우고 있다.
눈여겨볼 성적은 탈삼진이다. 올해로 KBO 리그 5년 차에 접어든 해커는 9이닝당 탈삼진이 4.48개에 불과하다. 규정 이닝을 채운 투수 25명 중 수치가 가장 낮다. 이 부문 1위 메릴 켈리(SK·9.33개)보다 약 5개 정도가 적다. 생소한 모습이다. 2013년부터 NC에서 뛰고 있는 해커는 매년 9이닝당 삼진 5.8개 이상을 잡아냈다. 지난해는 개인 통산 최다인 7.61개로 시즌을 마쳤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나이를 고려하면 '구위가 떨어졌다'고 판단하기 쉽다. 하지만 배터리로 호흡을 맞추고 있는 포수 김태군의 의견은 다르다. 김태군은 "한국 무대에 적응을 해서 그런 것 같다. 과거엔 힘으로 던지는 스타일이었는데 적응하면서 이닝을 많이 끌고 가는 투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타일이 바뀌었다는 의미다.
김경문 NC 감독의 평가도 비슷하다. 김 감독은 "한국에 계속 있으면서 연구를 많이 했다. 빠른공보다는 (변화구를 적재적소에) 섞어 던지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 맞혀 잡는 유형이다"며 "삼진을 잡으려면 최소한 공 5개를 던져야 하는데 (맞혀서 잡으면) 그만큼 효율적이다"고 변화를 반겼다.
투구 수 관리가 탁월하다. 해커는 지난 21일 인천 SK전에서 9이닝 1실점 완투승을 거뒀다. 아웃 카운트 27개 중 삼진은 단 1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스트라이크존 구석구석을 찌르는 완급조절로 땅볼 14개(뜬공 12개)를 이끌어 냈다. 레퍼토리가 다양했다. 컷패스트볼(39개)·체인지업(32개)·슬라이더(21개)·커브(2개) 등을 다채롭게 섞어 던지면서 타격 타이밍을 빼앗았다.
힘으로 윽박지르는 게 아니라 노련하게 배트를 이끌어 냈다. 9회 급격하게 늘어난 투구 수(8회까지 90개)만 아니었다면 100구 이하로 경기를 끝내는 것도 가능했다. 해커는 9이닝당 볼넷이 1.10개에 불과할 정도로 컨트롤이 완벽에 가깝다. 탈삼진이 적지만 순항을 이어 가는 비결이다. 해커는 "난 삼진 비율이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 매 경기 삼진으로 이닝을 빨리 마무리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다"며 "늘 삼진을 잡기가 어렵기 때문에 맞혀 잡는 투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삼진 욕심을 버린 해커가 더욱 강력한 위력을 떨치고 있다. NC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는 원동력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