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외국인 타자 닉 에반스(30)가 사인 미스로 벌금을 낼 뻔했다. 그런데 '선처'를 받았다. 사인 미스의 결과가 '홈런'이어서다.
사연은 이렇다. 에반스는 30일 잠실 한화전에서 1군 복귀전을 치렀다. 왼쪽 견갑골 실금 부상으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된 지 17일 만이었다. 에반스는 "빨리 1군에 등록돼 경기에 나가고 싶었다. 지난 몇 주간 지켜만 보느라 너무 괴롭고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기다렸던 순간. 그래서인지 시즌 20호와 21호 홈런 두 방을 몰아치며 참아온 힘을 폭발시켰다.
문제는 결승포가 된 두 번째 홈런이었다. 이미 1-2로 뒤진 1회 역전 3점 아치를 그렸던 에반스는 4-4 동점을 이룬 6회 무사 1루서 세 번째 타석에 섰다. 한화 선발 투수 이태양의 첫 공 세 개를 모두 골라냈다. 볼카운트 3-0에서 두산 벤치에서 '웨이팅' 사인이 났다. 스트레이트 볼넷이 나올 수 있으니 일단 치지 말고 공을 하나 보라는 신호였다. 그러나 에반스는 이태양의 4구째 직구(시속 137㎞)가 바깥쪽으로 높게 들어오자 그대로 받아쳤다. 왼쪽 담장을 넘어가는 결승 아치가 됐다.
두산 벤치에는 잠시 유쾌한 파장이 일었다. 에반스의 홈런으로 다시 리드를 잡은 건 좋은 일이다. 한편으론 사인과는 반대인 플레이에서 나온 득점이라 마냥 웃을 수 없었다. 선수단 내규에 따라 사인 미스를 저지른 선수는 엄연히 벌금 10만원을 물어야 했다.
그러나 경기 후 열린 '긴급' 선수단 회의에서 에반스의 벌금은 면제해주기로 결론이 났다. '아무리 사인을 놓쳤어도 중요한 홈런을 쳤으니 이번만 이해해주자'는 데 뜻을 모았다. 오랜만에 1군에 돌아와 승리에 힘을 보탠 에반스의 사기도 고려했다. 두산 관계자는 "훈훈한 선수단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라고 귀띔했다.
에반스도 기뻐했다. 시즌 초반 부진의 늪에 빠져 허우적댈 때, 믿고 기다려준 두산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그는 "아마 당시 집으로 돌아가라고 해도 이해했을 것이다. 2군에서 보낸 시간이 큰 도움이 됐다"며 "복귀하자마자 홈런으로 팀 승리에 기여할 수 있었던 부분이 의미 있었다. 다시 기회를 주고 도움을 준 감독님과 1·2군 모든 코칭스태프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다음 날인 31일에는 아예 김태형 두산 감독에게 와인을 선물했다. 내규를 어겼다는 데 대한 미안함과 벌금 납부 면제에 대한 고마움을 와인으로 표현했다. 김 감독은 "그런 사인 미스는 얼마든지 해도 좋다"며 껄껄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