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의 젊은 투수들이 마운드 위에서 자주 하는 행동이 있다. 껌을 씹는다. 김태형(49) 두산 감독의 특별 주문이다.
김 감독은 지난해 처음으로 감독 지휘봉을 잡았다. 시즌 초반부터 붕괴된 불펜진 운영이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베테랑의 잇따른 이탈로 젊은 투수들이 짐을 짊어져야 했다. 예상대로 처음에는 고전했다.
고전의 이유 중 하나가 긴장이었다.
마운드 위에 오르면 표정이 굳었고, 투지가 살아나지 않았다. 이때 김 감독이 했던 주문이 "껌을 씹으라"였다. 타자와의 기싸움에서 밀리지 말라는 의도였다. 진야곱, 윤명준 등 젊은 투수 모두가 대상이었다.
마운드에서 껌을 씹는 모습은 자칫 안 좋게 비춰질 수 있다. 김 감독도 한 해설위원으로부터 "웬만하면 선수들에게 껌 좀 뱉으라고 해라. 보기가 안 좋더라"는 얘기를 직접 들었다.
부정적인 시선을 의식했지만 경험이 적은 투수들의 자신감을 위해 밀고 나갔다. 김 감독은 "아무래도 긴장감을 푸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어 "상대팀에서 나쁘게 볼 수 있겠지만 마운드에서 조용히 있는 것보다는 낫다. 상대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을 것 같더라. 심리적으로도 편안해지지 않을까 기대했다"고 덧붙였다.
포수 출신인 김 감독이 젊은 시절 겪었던 경험이기도 하다.
김 감독은 "경험이 적은 포수는 투수에게 사인 하나 내기도 쉽지 않다. 이때 코칭스태프에서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메시지를 줬다. 그 말 한 마디가 무척 도움이 됐다"고 회상했다. 그래서 지금 투수들에게 하는 "껌을 씹으라"는 말 뒤에는 '편하게 던지고 싶은대로 던져보라'는 뜻이 숨어 있다.
지난해 두산 투수진에서는 왼손 진야곱의 성장이 눈에 띄었다.
공은 빠르지만 위기에서 쉽게 흔들리는 게 약점이었다. 진야곱은 "투구 밸런스가 흐트러지거나, 타자를 출루시키면 마음이 약해지곤 했다. 강해 보이고 싶어서 껌을 씹기 시작했는데 집중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이어 "예전엔 나만 마음을 다잡고 던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상대 타자에게 강한 이미지를 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실감한다"고 말했다.
두산 중간 계투진은 지난해 후반기부터 안정감을 보였다. 기세는 포스트시즌까지 이어졌다. 김 감독은 "후반기부터 '그래 맞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니 나 역시 심적으로 편해졌다"고 말했다. 감독이 선수에게 강조한 자신감이 다시 감독에게로 이어진 셈이다.
승부처에서는 선수 뿐 아니라 감독 역시 긴장한다. 그렇다면 김 감독은 껌을 씹을까. 그는 "씹긴 했다. 그런데 TV 화면에 잡힌 모습이 정말 보기에 좋지 않았다"며 "나는 사탕이나 먹어야겠더라"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