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매리너스는 4일(한국시간) 이대호(34)와의 계약을 공식 발표했다. 금액은 발표되지 않았다.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마이너리그 계약이기 때문이다. 즉, 이대호는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에 포함되지 않는 선수다. 메이저리그로 승격되기 전까지는 마이너리거 연봉을 받아야 한다. 승격에 대한 보장은 계약서에 존재하지 않는다.
박병호(4년 1200만 달러), 김현수(2년 700만 달러)와 비교할 수 없는 조건이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다 포기한 소프트뱅크 동료 마쓰다 노부히로도 금액은 낮지만 메이저리그 계약을 제안받았다.
불리한 조건은 너무 많았다. 나이가 많고, 포지션은 수비 공헌도가 떨어지는 1루수나 지명타자다. 주루 능력은 평균 이하다.
투고타자 양상의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활용도가 떨어지는 선수다.
지난해 윈터 미팅에서는 200만~250만 달러 규모의 메이저리그 계약을 제안 받았다. 이대호의 에이전시는 협상 기간을 늘리며 더 나은 조건을 따내려 했다. 그러나 상황은 오히려 악화됐다.
하지만 이대호는 이 조건을 받아들였다.
이대호의 지인은 그가 메이저리그 행을 추진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타자와 정면승부하는 곳에서 야구를 하고 싶다.”
일본 프로야구 네 시즌 동안 이대호는 정상급 활약을 했다. 극단적인 투고타저 환경에서 3할 타율을 두 차례, 20홈런 이상을 세 차례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해 시즌 중반부터 이대호의 주위에서는 “그가 일본을 떠나고 싶어한다”는 말이 나왔다.
대우가 나빠서가 아니다. 소프트뱅크는 지난해 이대호에게 외국인 선수 중 두 번째로 높은 연봉을 안겨줬다. 오 사다하루 구단 회장은 1월말 당초 구단 방침을 뒤집고 “2월까지 복귀를 기다릴 수 있다”고 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소프트뱅크가 이대호 복귀 시 책정한 연봉은 일본 프로야구 전체 최고인 6억 엔이다.
이대호는 자신의 타격에 대해 “공을 강하게 때려내는 게 즐겁다”고 말한 적이 있다. 미국식으론 ‘퓨어 히터’다.
2001년 롯데 입단 뒤 5시즌 동안 이대호는 ‘힘은 있지만 정교함이 떨어지는 타자’였다. 하지만 2006년 타격 3관왕에 오르며 KBO리그를 대표하는 타자로 성장했다. 김무관 당시 롯데 타격 코치는 “타격은 인내와 공격성 가운데서 중심을 잡는 것”이라는 말을 이대호에게 자주 했다. 타고난 공격성을 다스리면서 자기 공을 때려낼 수 있었던 게 이대호의 성공 이유였다.
집요하게 타자의 약점을 노리는 일본 프로야구는 그에게 더 큰 인내심을 요구했다. 한국 시절보다 슬럼프 기간이 길어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팀은 2년 연속 일본시리즈 정상에 올려놓은 뒤 이대호의 눈길이 메이저리그로 향했던 건 어쩌면 자연스럽다. 냉정하게 보자면 메이저리그는 지금의 이대호를 ‘메이저리거’로 보지 않는다. 계약 조건이 그렇다.
그러나 정면승부를 원했던 이대호는 정면만 바라보고 갔다. 소프트뱅크 복귀라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고, 옆에서 돈 계산을 하지도 않았다. 금전적으로는 일본으로 돌아가는 게 훨씬 낫다.
불리한 조건은 여러 개다. 스프링캠프부터 힘든 경쟁을 해야 한다.
마이너리그에서 아무리 잘해도 자리가 나지 않으면 메이저리그로 올라갈 수 없다. 승격하더라도 일시적으로 부진하면 곧바로 강등될 수 있다. 여기에 시애틀의 세이프코필드는 타자에게 가장 불리한 구장 중 하나다.
하지만 어차피 프로는 경쟁을 해야 한다.
실력으로 자리를 따내서 굳히면 마이너리그 계약은 큰 의미가 없다.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갖고 있는 선수도 구단 사정에 따라 강등에 동의하는 일은 허다하다. 타자에게 불리한 홈구장은, 그렇기에 시애틀이 ‘타자 이대호’를 평가해 계약 오퍼를 한 조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