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은 23일 영국 런던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2019~2020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B조 3차전 츠르베나 즈베즈다(세르비아)와 경기에서 멀티골을 폭발시키며 토트넘의 5-0 대승을 이끌었다. 영국 현지에서는 손흥민을 향한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이제 손흥민이 '멀티골'을 터뜨렸다는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일반적인 현상이 될 만큼 손흥민은 유럽에서 톱클래스 공격수로 성장했다. 발롱도르 최종후보 30인 안에 포함된 것이 이를 명백하게 증명하고 있다.
그래도 이번 멀티골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손흥민의 유럽 무대 통산 120호골과 121호골이기 때문이다. 한국 축구에 새로운 역사가 탄생할 발판을 마련했다. 유럽 무대 121호골은 한국 선수 최다골 타이 기록이다. 기존 121골을 기록한 이는 '전설' 차범근이다. '차붐'이라 불린 그는 1978년부터 1989년까지 독일 분데스리가 다름슈타트·프랑크푸르트·레버쿠젠 등을 거치며 총 121골을 기록했다. 이제 곧 차붐도 역대 2위로 내려가는 날이 온다. 손흥민이 앞으로 1골을 추가할 때마다 한국 축구 역사는 새롭게 써진다.
위대했던 차붐의 기록인 121골에 손흥민이 도착하자 많은 이들이 차붐과 손흥민을 비교하고 있다. 누가 더 빨리 121골을 달성했나·기간으로 따지면 안 되는 것 아니냐·누가 더 존재감이 컸나 등 이런 비교는 '누가 더 위대한 선수인가'라는 질문까지 도달한다. 누리꾼들은 열심히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다.
지금 이런 질문에 힘을 뺄 필요는 없어 보인다. 차붐과 손흥민의 비교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누가 더 위대한들 또 어떠한가. 두 선수 모두 한국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업적을 일궈냈다. 축구의 대륙 유럽에서 한국 축구의 위상과 자긍심을 드높였다. 한국에서 이런 불세출의 스타가 탄생한 기적. 30년 전 차붐에 감사했고, 지금 손흥민에 고마운 마음을 가지면 된다. 30년이라는 긴 기다림 끝에 또 한 명의 전설이 등장했다는 것에 마음껏 열광하면 된다. 시대가 다르고, 축구의 전술이 다르고 또 축구를 받아들이는 환경이 다른 두 스타들 비교해 꼭 순위를 가릴 필요는 없다. 모두가 영웅이고, 두 선수 모두 한국의 자랑이다.
진정 우열을 가리고 싶다면 먼 훗날 손흥민이 현역에서 은퇴한 뒤 세계 축구역사와 한국 축구역사가 판가름해줄 것으로 보인다. 누구 전문가 한 두 명으로 평가할 존재가 아니다. 또 소수의 의견으로 갈릴 순위도 아니다. 역사가 결정할 수 있게 기다림이 필요하다.
정작 차붐과 손흥민은 서로를 존중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차붐은 항상 손흥민의 활약에 환호했다. 그리고 손흥민이 빨리 자신의 기록을 깨주기를, 자신보다 더 높이 비상하기를 바랐다. 손흥민은 차붐과 비교에 항상 고개를 저었다. 손흥민은 차붐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존경의 대상이라고 표현했다. 차붐은 후배의 도약으로 한국 축구가 더욱 발전하기를 기원하는 것이고, 손흥민은 유럽에서 활약할 수 있게 길을 열어준 선배의 노력을 잊지 않는 것이다. 이런 두 전설의 서로에 대한 존중은 한국 축구가 더욱 아름답게 발전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언젠가 차붐은 일간스포츠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손흥민을 향한 차붐의 진심을 느낄 수 있는 말이다.
"(손)흥민이가 한국 축구에 얼마나 영향력이 큰지 실감하고 있다. 많은 축구 선배들이 새로운 길을 걸어왔고, 지금 흥민이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흥민이는 지금 어리다.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더 많다. 흥민이가 나를 넘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요건을 가지고 있다. 흥민이 그렇게 해야한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 정체되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