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무사히 치러진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국제') 한 가운데 이 둘이 있었다. 저예산 독립영화 '미행'으로 '부국제'에 공식 초청된 조민수와 이송희일 감독이다. 공식적으로, 강수연 집행위원장과 김동호 이사장이 '부국제' 살리기 전면에 나섰다면, 비공식적으로 발에 땀이 나도록 뛴 이는 단연 이 두 영화인이다. 특히 '베니스의 여왕' 조민수는 '부국제-올해의 배우상' 심사위원으로 십수편의 작품을 일일이 보면서 한국 영화계의 숨은 보석 찾기에 힘을 보탰고, 이송희일 감독은 일반 관객들과 함께 '부국제'를 즐기는 '시네마 투게더' 행사에 6년만에 참여했다.
'부국제' 보이콧 사태와 '김영란법 시행' 등으로 올해 영화제가 썰렁할 것을 예상한 두 사람은 신선한 이벤트를 마련하기도 했다. "일인당 만원이면 된다. '우리들의 밤'을 만들어 해운대에 있는 영화인들을 뭉치게 하겠다"면서 해운대역 시내에 있는 한 분식집을 통째로 빌렸다. 떡볶이에 오뎅 국물, 그리고 소주 한잔이었지만 정이 있었고 열정이 살아숨쉬었다. "부산에 오길 잘했다"라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매일 같이 영화와 술, 그리고 사람으로 바빴던 이 두 사람을 해운대 맛집으로 유명한 한 복국집에서 만났다. 오후 7시가 넘은 시간, 조민수는 자리에 앉자마자 "김영란법을 지켜야 하니 기자들이 쏴야 해요. 사장님 여기 소주 일병에 사이다 하나"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이송희일 감독은 "나 사실 어제도 여기서 달렸는데~"라며 조심스레 배를 쓰다듬었다. 영화 '미행'으로 처음 호흡을 맞췄지만 이내 영화 동지가 된 두 사람과의 술자리는 '김영란 님의 취지에 어긋나지 않게' 새벽까지 이어졌다.
-'미행'을 인연으로 부산도 오고 레드카펫도 섰어요.
이 "태어나서 레드카펫은 처음이었어요. 그간 한번도 안했는데 이번에 조민수 선배가 '이 감독 안하면 안서겠다'고 하셔서 끌려나갔죠. 사진 보니까 죄수가 형사에게 수감돼 끌려가는 것 같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괜히 했나 싶기도 하지만 민수 선배님 아니었으면 이런 추억 없었겠죠."
조 "불러줄 때 부지런히 다녀 이 사람아, 그런 거 괜히 빼다 보면 나중에 안 불러주면 섭섭해진다. 티 안내서 그렇지 사람들 속이 다 그렇지 않아? 그래서 전 불러주면 어디든 가요. 수천, 수만명의 영화인이 있는데 저를 불러준다는 거 자체가 너무나 고마운 거잖아요. 그리고 올해 부산영화제는 남일 같지 않아서 더 신경쓰였어요. 아픈 자식을 보는 심정이랄까? 배아파 낳은 자식이 죽어가는 걸 보고만 있을 순 없잖아요. 이 감독도 사실 부국제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서 저와 레드카펫도 나서고, '시네마 투게더' 같은 행사도 열심히 뛰고 그런 거예요."
-올해 각선미가 드러나는 화이트 드레스로 베스트드레서로 손꼽혔어요.
조 "이송희일 감독이 레드카펫 안하려 해서 드레스도 안맞췄다가 마지막에 맞췄죠. 급하게 했는데 이승진웨딩에서 직접 제작해줬어요. 그리고 헤어 메이크업 스태프도 같이 출장와 주고. 너무 고마워요. 제가 이마에 흉터가 있어요. 평상시엔 잘 안보이는데 빛을 받거나 정밀한 카메라엔 찍혀요. 이거 티안나게 신경써줘서 고맙지. 취중토크도 포토샵 해줄거죠? 지워줘요. 엄마가 그러는데 아장아장 걸을 때 마당 절구통에 부딪혀 이마를 찧었다네. 나이가 나오나? 절구통 있던 그 시절."
-개막식에서 '피에타' 김기덕 감독과 오래간만에 만났죠.
조 "작년 영화제 이후 일년여 만에 만났어요. 이런게 영화제의 묘미인 거 같아요. 김 감독이 오래간만에 반가워서인지 허그하려 하는데 내가 '옷 구겨지니까 하지마 하지마'라고 했어요. 당황하는 모습이 귀여웠어요. 올해 '그물'로 초대받아 조연들과 레드카펫에 단체로 서는 거 보고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조연들까지 잘 챙기는 김기덕 감독의 자상함은 인정해요."
-우려 속에서 의외로 '부국제'가 차분하게 진행됐어요.
조 "올해 '부국제'가 확 달라졌다고 하는데 맞아요. 국내 영화인들은 줄어들었지만 오히려 해외 영화인들이 많이 오고 내실도 탄탄해졌어요. 국제영화제라면 그게 맞는 거 아닌가요? 우리 눈에 익숙하지가 않아서 그렇지 취지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봐요. 개막실날도 레드카펫 행사가 일곱시까지인데 일곱시반까지 했잖아요. 또 좋았던 것은 진짜 출품작의 주인공들, 영화인들만 왔다는 거. 올해 '꽈당'하거나 '커튼' 입고 온 엔터테이너들 없잖아요. 유명한 배우들이 아니어서 그런 거지, 다 영화인들이었어요. 그걸 보며, '우리 김동호 이사장님이 이런 그림을 만드신거구나'하는 존경심이 들었어요. 김동호 이사장님에겐 부산영화제가 본인이 낳은 자식 같은 거 아닐까요? 그 안타까움과 사연도 영화인들이 이해해줬으면 해요. 강수연 집행위원장과 두 사람이 얼마나 많은 조율을 하며 속이 썩었을까. 두 사람 만나자마자, 꽉 안아줬어요."
이"20여년 전 해운대 파라다이스 호텔 로비에서 김동호 위원장 등 영화계 원로 세분이 '부산에 근사한 국제영화제 하나 정도는 있어야되지 않냐'고 말했던 게 씨가 되어서 지금에까지 왔는데 영화인들이 어렵게 피땀 흘려 키운 영화제가 외면받는 건 저도 원치 않았어요. 그래서 부산에 왔고, 얼굴 보여주는 행사에도 많이 나서게 됐죠. 이번엔 맛집 탐방, 칼럼니스트가 되어 보자는 개인적 도전도 있긴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