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브는 참 어려운 기록이다. 혼자 힘으로만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 일단 팀이 리드 상황을 만들어 줘야 한다. 구위가 아무리 좋아도 등판 기회가 없으면 기록을 쌓을 수 없다. 선발투수가 앞에서 잘 던져야 하고, 타선은 득점을 올려 줘야 하는 전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전체적으로 팀 전력이 떨어지면 강력한 마무리 투수를 보유해도 쓸모없다.
올 시즌 한화의 모습이 딱 그렇다. 한화는 정우람이라는 걸출한 마무리 투수를 보유했다. 그러나 정우람은 지난 22일까지 11세이브로 이 부문 리그 6위다. 팀이 패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등판 상황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난 16일 고척 키움전에서는 팀이 6-9로 뒤지던 9회에 나와 1이닝을 소화했다. 지난 11일 대전 두산전 이후 나흘 동안 팀이 모두 패해 세이브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컨디션 조절차 마운드를 밟았다. 반면 하재훈(SK)과 고우석(LG)은 정우람과 비교하면 상황이 다르다. 팀이 잘나가면서 세이브도 빠르게 쌓아 간다. 기회가 많다.
마무리 투수라는 자리는 팀 성적이 어느 정도 나와야 그 역할이 빛날 수 있다. 프로야구가 시작된 뒤 많은 마무리 투수가 리그를 호령했다. 오승환(현 콜로라도) 김용수(전 LG) 구대성(전 한화) 등 굵직굵직한 성적이 남긴 세이브 투수들은 공통적으로 당시 팀 성적도 괜찮았다. 팀 승리와 마무리 투수의 세이브는 비례한다. 안타깝게도 세이브 투수는 혼자 힘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힘들다.
반면 타자의 최다 안타는 약간 내용이 다르다. 팀 성적과 결과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순전히 타자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다. 팀이 패하더라도 타석에서 5안타를 때려 내면 존재감이 돋보인다. 1980년대에는 장효조(전 삼성)가 '안타 제조기'로 이름을 알렸다. 1990년대에는 해태 이종범과 LG 이병규(9번) 등 선수들이 안타를 잘 때려 냈다. 2000년대로 넘어와서는 김현수(LG) 정근우·이용규(이상 한화) 손아섭(롯데) 등이 잘 해 준다. 타석에서 안타를 생산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모두 타격 기술과 정확도가 수준급이다.
최근에는 김하성·이정후(이상 키움) 강백호(kt) 같은 선수들의 활약이 무척 돋보인다. 김하성은 리그 6년 차, 이정후는 3년 차, 강백호는 이제 2년 차다. 앞서 언급한 선수들의 저연차 때보다 좀 더 위협적인 모습을 타석에서 만들어 준다는 느낌이다. 김하성과 강백호는 체구에 비해 은근히 파워가 있다. 어린 나이에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성장하고 있다. 이정후도 마찬가지다. 타격은 물론이고 빠른 발과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주루와 수비에서도 두각을 나타낸다.
순차적으로 세대교체가 되는 느낌이다. 승리가 많은 최고 팀에 최고 타자가 있는 것은 아니다. 팀이 패하는 상황에서도 '안타'로 존재감을 충분히 보일 수 있다. 김하성·이정후·강백호는 모두 올 시즌 리그 최다 안타 톱5 안에 이름을 올린다. 거포형 외국인 타자들이 순위 경쟁에서 우위를 보이는 '홈런'과 비교하면 차이가 분명하다. 외인 타자들이 따라오기 힘든 안타 생산 능력으로 프로야구에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중이다. 프로야구의 미래를 봤을 때는 상당히 유의미한 '결과'다. 김하성·이정후·강백호의 타석을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