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에서 뛰던 지난해 이형범의 구종은 3개였다. 포심패스트볼(20%)과 투심패스트볼(31%·이하 '투심') 그리고 슬라이더(32%)를 섞었다. 포크볼과 커브·체인지업도 간간이 던졌지만, 비중이 높지 않았다. 두산 유니폼을 입은 올 시즌에는 달라졌다. 투심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70%에 육박하며 사실상 '원 피치'에 가까운 레퍼토리를 유지 중이다. 단조로울 수 있지만, 오히려 성적은 크게 향상됐다. 전반기 47경기에 기록한 평균자책점이 1.88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이형범의 가장 문제는 왼손 타자 상대 성적이었다. 지난해 왼손 타자 피안타율이 0.345. 피출루율(0.420)과 피장타율(0.517)을 합한 피OPS가 0.937로 최악에 가까웠다. 하지만 올 시즌에는 왼손 타자 피안타율이 0.186로 크게 내려갔다. 이형범이 꼽은 비결은 투심이다. 그는 "투심은 왼손 타자에게는 스트라이크존에 높게 형성되면 치기 쉬운 공이다. 그런데 낮게 형성되면 배트 끝에 맞거나 파울이 된다. 제구만 낮게 되면 어떤 타자도 정확하게 맞추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오른손 투수가 던지는 투심은 오른손 타자의 몸쪽, 왼손 타자의 바깥쪽으로 살짝 휜다. 제구가 되지 않으면 스트라이크존에 몰려 장타로 연결되기 쉽지만 그게 아니라면 좋은 '무기'다. 홈플레이트 앞에서 변화가 심해 쉽게 공략하기 어렵다. 스프링캠프 동안 낮게 던지는 부분에 포커스를 맞춰 훈련했던 게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제구가 높으면 쉽게 안타나 장타가 나온다. 스트라이크존 가운데로 가다가 바깥쪽으로 휘어 나가야 하는데 꺾이지 않고 밋밋하게 들어가면 공략당하기 쉽다. 좌우 변화보다 각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위아래 변화에 신경 쓴다"고 말했다.
투심은 한때 잊고 있던 구종이다. 화순고 3학년 당시 이광우(현 두산 2군 트레이닝코치) 감독에게 배웠지만, 한동안 던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포심패스트볼과 비교할 때 구속이 빠르지 않다. 힘으로 타자를 압도할 수 없어서 몇몇 투수에겐 매력적이지 않은 구종이다. 이형범도 처음엔 그랬다. 하지만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는 "군대(경찰야구단·2014~2015년) 다녀온 뒤에도 던지지 않았다. 하지만 직구(포심패스트볼) 구속이 시속 140km 초·중반밖에 나오지 않아 애매하더라. 뭔가 빗맞게 할 수 있는 구종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투심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 배웠던 걸 안 던지다가 2017년 스프링캠프 때 다시 던졌는데, 그때 성적이 좋아져서 개막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고 말했다.
극단적으로 투심 비율을 높인 선택이 통했다. 왼손 타자를 효과적으로 처리하니 성적이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마무리 함덕주가 부진한 틈을 타 마무리 자리까지 꿰찼다. FA(프리에이전트) 이적을 택한 양의지 보상선수로 영입됐을 때만 해도 물음표가 가득했지만, 성적으로 의문점을 지워 냈다. 이젠 두산 불펜에 없어서는 안 될 카드가 됐다.
이형범은 "운이 따라 주다 보니 자신감을 얻었다. 경기에 나가고 점수를 주지 않으니 어느새 성적이 쌓여 있더라. 감독님께서 적극적으로 승부하는 걸 좋아하신다. 그게 또 내 스타일이어서 그 부분에 대해 어필하자는 생각이었는데, 좋게 봐주신 것 같다"고 감사함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