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KBO 리그 등록 선수는 총 614명이다. 이 중 1군을 경험한 선수는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대부분이 2군에서 바늘구멍을 통과하기 위해 무한경쟁을 펼친다. 꽤 많은 선수는 끝내 기회를 잡지 못한 채 유니폼을 벗기도 한다. '형제'가 함께 1군에 등록되는 일은 그래서 더 드물다. 최정(30)과 최항(23·이상 SK) 형제가 특별한 이유다.
최정·최항 형제는 지난 6월 25일 리그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인천 kt전에서 각각 3루수와 1루수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면서 형제 선수가 한 팀에서 동시에 선발 출전한 역대 네 번째 주인공이 됐다. 1985년 양승관·양후승(당시 청보)과 1988년 구천서·구재서(당시 OB) 그리고 1993년 지화동·지화선 형제에 이어 무려 24년 만이다.
성적도 준수하다. 최정은 25일까지 46홈런을 때려내 2년 연속 홈런왕을 예약했다. 리그를 대표하는 3루수로 올 시즌 MVP를 노리고 있다. 동생 최항도 3할2푼대 타율로 트레이 힐만 SK 감독의 눈도장을 받고 있다. 형에 가려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지 못했지만, 서서히 입지를 넓혀 가는 중이다.
두 선수 모두 SK의 과거이자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팀 내에서뿐만 아니라 리그 전체에서도 가장 '뜨거운 형제'다. 한국 최초의 스포츠 전문지인 일간스포츠가 창간 48주년을 맞아 리그 역사를 새롭게 쓸 최씨 형제를 만나봤다.
-일간스포츠가 창간 48주년을 맞이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최정(이하 정)="일간스포츠는 내게 의미 있는 추억이 있는 매체다. 일간스포츠와 조아제약이 공동 제정한 2012년 열린 '조아제약 프로야구 대상 시상식'에서 최고 수비상을 받았다. 야구에서 수비가 정말 중요한데, 수비에서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그 느낌이 아직 생생하다."
-형제가 함께 한 팀에서 경기를 뛰고 있다. 정="처음에는 부담이 조금 됐다. 항이가 못하고 나도 못하면 부담이 두 배가 되지 않겠나. 그러나 항이가 적응을 잘 하면서 부담을 덜었다. 1군에 있는 기간이 오래되진 않았지만 항이가 잘해준 덕분에 경기 때 내 플레이를 더 잘 할 수 있었다. 지금은 동생이 아닌 선수 대 선수로 지낼 만큼 편해졌다. 그라운드에서 항이가 실수를 하면 다른 선수가 하는 것과 똑같은 느낌이다. 한 팀에 있다는 게 기분 좋다." 최항(이하 항)="일단은 편하다. 2군에서 훈련을 하는 것보다 1군에서 지내는 게 낫다(웃음). 아무래도 형이 있으니까 심리적으로도 도움이 많이 된다. 든든하다."
-그라운드에서 형에게 배우는 게 있을까. 항="타격의 기본적인 부분이다. 나는 형처럼 홈런을 많이 치는 스타일이 아니라 작은 부분부터 배우려고 한다. 홈런을 많이 때려내는 건 단순하게 힘만 키워서는 할 수 없는 것 같다. 그 부분은 따라 하려고 해도 안 된다."
-실제 뛰는 모습을 보니 어떤가. 정="첫 경기였던 kt전(6월25일 4타수 1안타)에서 치는 걸 보니 잘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대로 성적이 나오고 있다. 수비도 마찬가지다. 듣기로는 2군에서 2루 연습을 한 지 두 달 정도 밖에 안됐다고 하더라. 걱정이 됐는데, 막상 경기하는 걸 보니까 적응을 잘 하더라. 타격 성적만 봤을 땐 처음부터 잘 할 것 같았다."
-때로는 형과 함께 뛴다는 게 부담이 될 수 있다. 항="부담은 없었다. 오히려 더 자신감이 있었다. 부담감이 아닌 자부심을 느꼈다." 정="잘 된다고 무리하지 않았으면 한다. 오버를 하다보면 다칠 수 있다. 다치지 않고 야구를 오래하는 게 중요하다. 야구를 잘 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아프지 않아야 한다."
최정과 최항은 삼형제 중 맏이와 막내다. 둘째인 최평(26)씨는 운동이 아닌 공부를 택했다. '정·평·항'이라는 독특한 이름은 아버지 최순묵 씨가 직접 지었다. '정'직하고 '평'탄하게 '항'상 우애를 갖고 살라는 의미다. 야구선수로 진로를 정한 최정과 최항은 비슷한 길을 걸었다. 같은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녔다. 유신고를 졸업하고 SK에 입단한 것도 같다. 최정은 200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으로 와이번스 유니폼을 입었다. 계약금만 3억 원을 받았을 정도 A급 유망주였다. 최항은 201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8라운드 70순위에 지명됐다. 당시 드래프트에 참여했던 송태일 스카우트(현 SK 육성그룹장)는 "허리 부상이 조금 있어서 지명 순위가 밀렸는데, 타격에 소질이 있는 선수였다"고 회상했다.
-누구보다 부모님께서 좋아하실 것 같다. 항="티를 잘 안 내신다. 아버지께선 오히려 흥분하지 말고 차분하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동생이 야구를 시작할 때 형의 반대가 심했다고 들었는데. 정="부모님을 비롯한 가족 전체가 반대했다. 내가 야구를 했을 땐 운동이 정말 힘들었다. 많이 혼나기도 했다. 동생까지 그렇게 되는 걸 원치 않아서 반대했다. 한때 나도 야구를 그만 두려고 할 정도였는데, 항이가 결국 야구를 하더라." 항="야구부에 회비를 내면서 야구를 제대로 시작한 건 6학년 올라갈 때쯤이다. 어렸을 때 움직이는 걸 좋아했다.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으면 밖에서 야구를 하는 게 재밌어 보였다. 활동적이지 않나. 고등학교 때는 형이 가끔 TV에 나오면 신기하고 멋있어 보였다."
-어렸을 때 최항은 어떤 동생이었나. 정="개구쟁이였다. 사고뭉치는 아니어도 성질도 있었다.(웃음)"
-SK에 지명을 받았을 땐 기분이 묘했겠다. 정="항이가 야구하는 것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다만 주변에 있는 선배들이 '잘 한다, 잘 친다'는 이야기를 해주더라. 지명을 받았다고 하니까 기분은 좋았는데, SK라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그때부터 부담이 약간 됐다. 얼떨떨하기도 했다." 항="형이랑 나이 차이가 많다 보니 야구 선수 생활이 겹치지 않았다. 그래서 '아, 이제 같이 할 수 있겠구나' 싶어서 신기했다. 하지만 프로는 내가 생각했던 곳이 아니었다. 입단을 하면 곧바로 형하고 훈련도 같이 하고 그럴 줄 알았는데, 아예 딱 구분이 되더라. 처음에는 설렘이 컸는데, 나중에는 '차근차근 밟아 나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교롭게도 포지션이 두 선수 모두 3루다. 항="고등학교 때는 잔부상이 있어서 1루수로 뛰었다. 프로 입단 후에 포지션 폭을 넓혀 보려고 3루를 맡았다."
-최정이라는 선수의 존재감을 고려하면 부담은 없었나. 항=선수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기 발전을 위해 훈련을 하는 것이지, 다른 누가 있어서 이 포지션이 어렵다는 생각은 안 한다. 1루와 3루를 모두 맡을 수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기용될 수 있어서 더 좋지 않겠나."
-야구장 밖에선 서로 어떤가. 정="각자 자신의 생활을 한다(웃음). 항이는 나와 다르게 먹는 걸 잘 챙겨 먹는 스타일이다. 야구장 밖에서는 야구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고, 시간이 맞으면 취미 생활을 같이 하기도 한다." 항="크게 다른 건 없는데, 다만 야구 이야기를 잘 안 하고 일생 생활에 대한 대화를 자주 한다."
-야구 이야기를 잘 안 하는 이유는. 정="모든 선수가 다 비슷할 거다." 항="야구장 안에서 많이 하니까 그렇다."
SK에서 최씨 형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 않다. 최정은 부동의 주전 3루수다. 2군에서 3루수로 뛰었던 최항은 1군에 등록된 후 3루와 2루, 1루까지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 중이다. 최정이 잔부상에 시달린 8월에는 최항이 형을 대신해 13경기 연속 주전 3루수로 그라운드를 밟기도 했다. 형제가 함께 그라운드를 밟는 건 SK 입장에서도 전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요소다.
-서로의 장점을 꼽는다면. 정="항이는 정신력이 좋은 것 같다. 자신감도 넘친다. 1군에 처음 올라왔을 때 훈련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정경배 타격코치가 '스윙이 나보다 좋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만큼 스윙을 할 때 배트에 공이 맞는 면도 넓다. 발전 가능성이 크다." 항="형이 하는 야구의 색깔이 딱 잡혀 있다. '최정' 하면 생각나는 야구가 있지 않나. 나 역시 파워가 좋거나 정확도가 높다는 평가보다 나만의 색깔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동생에게 조언해 주고 싶은 게 있나. 정="딱히 없다. 앞으로 올라갈 일만 남은 것 같다. 다만 야구가 잘 될 때 다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아파서 쉬는 것보다 차라리 야구를 못하는 게 낫다. 내가 먼저 여러 경험을 해봤는데 안 다치는 게 곧 실력이다."
-함께 포스트시즌을 뛰는 것도 상상을 해봤나. 정="아직 그런 생각까지는 안 했다. 같이 1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다.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함께 들어가면 뜻깊을 것 같고, 높은 곳에 함께 가면 좋겠지만 아직은 섣부른 것 같다. 포스트시즌에 가게 되면 엔트리를 다시 짜야 하는데 항이가 함께 있으면 좋을 것 같긴 하다." 항="나는 상상을 해봤다. 한국시리즈를 TV로 보면서 '저런 무대에서 형과 같이 뛰면 더 재밌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올 시즌 1군에서 함께 뛸 것으로 생각했나. 정="기회를 잘 잡은 것 같다. 처음에는 항이가 공격에 비해 수비가 조금 아쉽다는 평가가 있었는데 뛰어보니까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내 기대를 뛰어넘는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 항="욕심이 없었다. 욕심을 부린다고 해서 잘 되는 것도 아니고, 그 욕심을 좋은 방향으로 가져가는 게 중요했다. 어디에 있더라도 아프지 말자는 생각이었다. 야구를 시작하고 꾸준하게 잔부상에 시달렸다. 그렇기 때문에 안 아프고 경기를 계속 나가는 게 중요했다. 1군에 올라가는 건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장점이 있나. 정="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도 있고, 안 될 때 더 잘 하려고 하는 것도 분명히 있다."
-형제 야구 선수의 꿈은 뭘까. 정·항= "한 팀에서 우승을 함께 하는 게 멋있지 않을까. 내년 1군 개막전에서도 함께 뛰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