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전벽해. 개막 전과 비교해 8개 팀 마무리 투수의 얼굴이 바뀌었다. SK 김태훈(→하재훈) 두산 함덕주(→이형범) LG 정찬헌(→고우석) 키움 조상우(→오주원) KIA 김윤동(→문경찬) kt 김재윤(→이대은)은 마무리 투수 보직을 동료에게 내줬다. 최충연의 선발 보직 전환 속에 우규민·장필준 더블 스토퍼 체제로 시즌을 맞은 삼성은 우규민과 최지광 등을 경기 상황과 상대 타선에 따라 기용, 붙박이 마무리가 없다. 롯데 역시 KBO 리그 역대 통산 세이브 2위(266세이브) 손승락의 부진 속에 박진형과 구승민이 컨디션과 등판 간격에 따라 마지막 투수로 등판한다. 개막 전과 다름없이 여전히 '클로저'로 활약하는 선수는 한화 정우람(3승 11세이브·평균자책점 2.03)과 NC 원종현(3승 19세이브·평균자책점 3.41) 둘뿐이다.
KBO 통산 161승 출신의 정민철 MBC SPORTS+ 해설위원 역시 "이렇게 마무리 투수가 많이 바뀐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각 팀마다 마무리 투수의 교체는 부상과 부진 탓이 가장 크다. SK는 초반 김태훈이 평균자책점 6점대에 블론 세이브 3개로 흔들리자 하재훈을 투입해 성공했다. 지난해 27세이브를 거둔 두산 함덕주는 5월 말 부진으로 2군에 내려갔고, 그사이 이형범이 바통을 넘겨받아 8세이브를 올렸다. LG 정찬헌과 키움 조상우·KIA 김윤동·kt 김재윤은 부상 속에 마무리 자리를 넘겨줬다. 반대로 보면 언제든 마무리 투수의 부진과 팀 마운드 사정을 고려해 뒷문지기가 바뀔 수 있다는 의미다. 두산과 키움은 함덕주·조상우가 제 페이스를 찾고, 부상에서 돌아오면 경험이 많은 만큼 다시 뒷문지기 역할을 맡을 가능성도 꽤 있어 보인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런 변화를 최근 몇 년간 지속된 한국 야구의 흐름, 또 강력한 투수의 마무리 부재와 연관지어 보고 있다. 통산 2056경기의 지휘봉을 잡은 김인식 전 국가대표 감독은 "올 시즌 개막 전에 마무리를 맡은 투수 가운데 손승락과 정우람을 제외하면 완전히 팀을 대표하는 마무리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 선수가 없었다"고 했다. 정민철 해설위원 역시 "오승환(콜로라도)·손승락·정우람처럼 마무리 투수라고 딱 정해진 선수가 별로 없었다"고 평가했다. 한발 더 나아가 정 위원은 "요즘 마무리 투수의 영역이 무너진 것 같다. 각 팀에서 '우리팀 마무리 투수다'라고 하지만 수시로 바뀐다. 붙박이 마무리 투수의 영역이 무너진 것 같다. 최근 추세가 집단 마무리 투수 체제를 보여 주고 있으며, 구위가 좋은 선수를 때에 따라 (마무리 투수) 앞에 기용하기도 한다"고 했다. 올 시즌 다소 완화됐지만 최근 몇 년간 타고투저의 리그로 운영되면서 마무리 투수가 좀 더 어려운 환경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고 진단했다.
마무리 투수라고 하면 150㎞ 강속구에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심장을 떠올린다. 현재 리그에서 140㎞ 후반대의 빠른공을 던지는 마무리 투수는 하재훈과 고우석 정도를 손꼽을 수 있다. '마이너리그 유턴파' 하재훈은 지난 23일 두산전에서 1이닝 1실점으로 오승환이 갖고 있던 31경기 연속 무실점 기록을 깨는 데 실패했지만, 4월 4일 롯데전부터 30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을 만큼 승승장구한다. KBO 리그 첫 시즌에 5승1패 17세이브 3홀드 평균자책점 1.29를 기록 중이다. 시속 150㎞ 이상의 공을 던지는 고우석은 4월 21일 키움전에서 통산 첫 세이브를 따낸 이래로 블론 세이브 없이 5승 13세이브 평균자책점 1.13으로 완전히 자리를 꿰찬 모습이다.
그럼에도 기존의 마무리 투수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은 새 클로저들은 예상보다 훨씬 선전하고 있다. 보상선수의 신화를 쓰고 있는 이형범은 이달에만 10이닝을 던져 7세이브, 평균자책점 0 행진 중이다. 문경찬도 마무리 보직 전환 이후에 블론 세이브 없이 9세이브, 평균자책점 제로를 유지하고 있다. 오주원 역시 이달 갑자기 마무리를 맡아 호투하고 있다.
김인식 전 국가대표 감독은 "하재훈과 고우석·문경찬 등은 좋은 모습이다. 부상이 아닌 다음에야 롱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정민철 해설위원은 "냉정하게 평가해서 1~2년 마무리로 잘 던졌다고 팀을 대표하는 클로저라 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면서 "그래도 오승환과 손승락·정우람처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 우리 리그가 부강해진다"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