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상훈 한국야구위원회(KBO) 심판위원장은 야구 경기 중 심판과 투수가 ‘무언의 대화’를 나눈다고 했다. 투수가 공을 던져 심판의 의사를 묻고, 심판이 응답해 주는 과정을 ‘일문일답’에 비유했다. 그는 “조리 있게 말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더 재밌지 않나. 제구력이 뛰어난 투수가 등판하면 심판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말했다.
투수들의 제구력 하락은 볼넷으로 이어진다. 80년대와 90년대 프로야구 투수들은 9이닝당 각각 3.17개와 3.28개의 볼넷을 내줬다. 2014년 4월 15일 현재는 4.29개다. 투구 기술과 변화구가 발전을 거듭했지만 제구력은 30년 전 투수들이 더 정교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도 제구력이 과거에 비해 퇴보했다고 입을 모은다. 이상군 한화 코치는 “투수들의 구속과 제구력은 반비례한다. 요새 투수들은 빠르게 던지려고만 할 뿐, 원하는 곳으로 던질 줄 아는 완성도는 떨어진다”고 했다.
두산 유희관(28)은 이러한 세태가 만들어낸 역설적인 성공사례다. 구속이 느려도 제구력이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유희관의 직구는 130km 중반이지만 칼날 같은 제구력으로 타자들을 제압하며 지난해 10승을 챙겼다. 유희관이 올해 12와 2/3이닝 동안 내준 볼넷은 단 1개다. 과거 제구력의 달인들은 어떤 비결을 가졌던 걸까.
◇최소 시간 경기? 제구력이 만들었다=1985년 9월 21일 구덕구장에서 열린 청보-롯데전의 경기시간은 1시간 33분이었다. 프로야구 최단시간 경기다. 요즘 경기 시간의 절반 정도다. 이날 롯데 선발 임호균(58)은 고(故) 장명부와 맞서 3-0 완봉승을 거뒀다. 그는 1987년 청보 시절 해태를 상대로 73개의 공을 던져 최소투구 완봉승을 한 기록도 있다. 임호균은 "국가대표팀에서 홈 플레이트에 공 6개를 일렬로 놓고 맞히기 내기를 하면 3번째, 6번째 등 원하는 대로 맞혔다"고 회상했다.
임호균은 "제구력이 투수의 생명"이라며 자신감을 강조했다. 83년 프로에 데뷔한 임호균은 신인의 각오를 묻자 "백인천을 2할대 피안타율로 막겠다"고 했다. 백인천은 바로 전 해 4할 타율을 기록한 대선배였다. 임호균은 "마운드 위에서 상대를 존경하면 구위와 제구력이 반은 감소한다"고 했다.
◇장호연의 이름 없는 변화구="모르겠다." 장호연(54)에게 현역 시절 몇 개의 구종을 던질 수 있었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장호연의 주무기는 슬라이더였다. 하지만 슬라이더에도 여러 가지 변화를 줬다. 이렇게도 잡아보고 저렇게 틀어서 던져보기도 하고, 짧게 던지고, 길게 던지고…. 경기 중에도 수없이 변화를 줬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름만 슬라이더지 제각각의 변화구였던 셈이다. 그는 “포수가 그 많은 구종을 다 외울 수 없어서 줄곧 슬라이더 사인만 냈고, 그저 내가 알아서 던졌다”고 말했다. 심지어 만루 위기에서 새 구종을 시험하다 홈런을 맞은 뒤 화장실에 끌려가 선배에게 혼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마운드 위에서 즉흥적으로 변형시켜 만든 슬라이더를 원하는 곳에 던질 수 있었던 원동력은 하체에 있었다. 그는 “하체가 견고하면 제구력은 자연스럽게 갖춰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심판을 속인 송진우=문승훈 심판위원은 송진우(48) 한화 코치가 현역 시절 '심판을 속이는 제구력'을 가졌다고 말했다. 문 위원은 "과거 '심판들이 송진우의 바깥쪽 공에 너무 후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그건 심판들이 송진우를 잘 봐준 게 아니고 그가 심판들을 이용한 것"이라고 했다. 공을 한 개 던질 때마다 정밀하게 바깥쪽으로 벌려나가며 착각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송 코치는 제구력을 총에 비유했다. 그는 “권총은 총열이 짧아 호신용에 적당하다. 저격총은 총열이 길어서 목표물을 정밀하게 조준 할 수 있다”며 “제구력도 마찬가지다. 누가 더 릴리스포인트를 최대한 길게 끌고 나와 던질 수 있느냐의 싸움”이라고 했다. '시속 1㎞ 빨라지려고 하기보다 1㎝ 뺄 수 있는 능력을 키우라'는 게 송 코치의 말이다.
◇심판을 도운 이상군=송진우는 심판을 속였지만, 심판을 도운 투수도 있다. 이상군(52) 한화 코치다. 이상군은 1m76㎝, 65㎏으로 큰 체구가 아니었지만 통산 105승을 거뒀다. 그의 제구력에 관해 내려오는 전설 중 하나가 심판에게 스트라이크를 가르쳤다는 이야기다.
"1987년 가을 마무리캠프였던 걸로 기억한다. 김광철 당시 심판위원장이 나를 불렀다. 심판들을 교육하는데 도움을 달라고 하더라. 스트라이크존에서 공 한 개 차이로 넣었다 뺐다 하면서 공을 던져줬다. 볼 판정을 교육하는 훈련이었다."
그는 투수들의 구속과 제구력이 반비례하는 이유에 대해 빠른 공을 던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불필요한 움직임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코치는 "고개가 움직이거나 젖혀지는 건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들의 공통점이다. 제구력에 손해를 보는 것은 물론 팔에도 무리가 생긴다. 제구력이 좋은 투수들의 폼은 간결하고 얼굴과 시선이 일정해서 던지고 난 뒤에도 끝까지 목표지점을 바라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