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카운트 하나가 모자랐다. 두산 유희관(28)이 프로 데뷔 첫 완봉승을 눈 앞에서 놓쳤다. 하지만 느린 공도 제구력만 있으면 타자들을 압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유희관은 지난해 포스트시즌에서 가장 돋보인 투수였다. 직구 구속은 130㎞대 중반이지만 탁월한 완급 조절과 제구력으로 타자들을 요리했다.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 3경기에서 21과 3분의 1이닝을 던지는 동안 2점 밖에 내주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무대인 한국시리즈는 아쉬웠다. 잠실 3차전에서 코칭스태프의 실수로 조기강판(3과 3분의 2이닝 2실점)된 유희관은 3승3패로 맞선 7차전에서 다시 선발로 나섰다. 하지만 4⅓이닝 2실점으로 부진했고, 두산은 우승컵을 삼성에게 내줬다.
5개월만에 같은 구장에서 같은 타자들을 상대한 유희관은 180도 다른 투구를 했다. 직구와 비슷한 속도로 날아가다 살짝 떨어지는 싱커로 타자들의 타이밍을 흐트러트렸다. 배트 중심에 정확하게 맞지 않는 타구는 십중팔구 땅볼이 됐다. 변화구를 기다리는 타자를 상대로 허를 찔러 직구를 꽂는 과감함도 돋보였다. 8회까지 피안타 1개만 내주며 삼성 타자들을 압도했다.
유희관은 4-0으로 앞선 9회 말에도 등판했다. 투구수가 103개 밖에 되지 않아 완봉승을 충분히 노릴 수 있었다. 선두타자 김상수와 정형식은 삼진과 2루수 땅볼로 처리했다. 하지만 힘있는 외국인타자 나바로의 벽을 넘지 못했다. 1볼 2스트라이크까지 몰아부쳤지만 왼쪽 담장을 넘는 솔로홈런을 맞았다.
쓴웃음을 지은 유희관은 후속타자 채태인에게도 중전안타를 내준 뒤 결국 마무리 이용찬으로 교체됐다. 8과 3분의 2이닝 3피안타 2볼넷 1실점. 시즌 2승째를 거둔 유희관은 "흔하지 않은 기회인데 마지막에 안일했다. 내 구위가 떨어져 바깥쪽 싱커로 승부했어야 했는데 직구를 던지다 맞았다. 잘못 생각했다"며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