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타임즈 업'이 시작됐다. '타임즈 업'은 '연예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한 목소리로 모든 여성을 위한 변화를 요구한다'는 취지의 미국 헐리우드 프로젝트다. 현재 와인스틴의 성추행 피해자인 애슐리 저드를 포함해 에바 롱고리아·메릴 스트리프·내탈리 포트먼 등 유명 여배우들과 작가 등 300 여 명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모든 업계 여성 노동자를 돕는다. 국내에서도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19일 이윤택 전 연희단패거리 연출감독의 성추행 공식사과 기자회견이 열릴 시점부터다.
▲피해자 연대 모임 속속 등장 음지에 숨어있었던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고 자신의 SNS를 통해 '미투' 캠페인을 펼쳤다. 폭로는 일파만파 퍼졌다. 그리고 피해자들은 오프라인에서 알음알음 뭉치기 시작했다. 피해자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생긴 결과물이다. 최근 오프라인에서는 매주 수요일 오후 10시 대학로 극단 고래 연습실에서 피해자 연대 모임이 열리고 있다. 극단 907 설유진 연출을 비롯해 약 20 여 명이 힘을 합치고 입을 모으고 있다.
피해자들은 범죄를 당하고도 혼자 삭히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2차 피해를 우려해서다. 개인이 덤볐다가 명예훼손으로 역고소를 당하는 일도 수두룩했다. 그래서 연대가 필요하다는 쪽에 무게가 실렸다.
설유진 연출은 "과거 피해자들이 직접 나서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최소한의 창구를 만드려고 한다. 알면서도 침묵했다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도 반성하고 있다. 더이상 방관할 수 없다"며 "이윤택 사건이 마무리 되더라도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함께 맞설 준비가 돼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문화를 만들기 위한 자정작용"이라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의 '미투'를 독려하는데 그치지 않고 연극계에 만연한 폐쇄적이고 고루한 권력구조에서 비롯한 문제들, 특히 지위와 힘을 이용한 성폭력 문제에 대해서 토론하고 서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성폭력인지 되짚으려 한다"고 덧붙였다.
▲'미투' 캠페인 이후 성폭력 상담 늘어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에는 상담 횟수가 점차적으로 늘어났다. 지난해 '#OO_내_성폭력' 해시태그 캠페인 이후 문화예술 쪽 분야의 피해자들이 상담을 요청해오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이소희 사무국장은 "보통 1년에 1100 여 건 문의가 들어오는데, 최근 성범죄에 대한 상담이 늘었다. 특히 문화 예술 쪽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상담이 주를 이룬다"며 "차별적인 언사 또는 성희롱을 묵인하는 공동체 문화에서 곪았던 게 터졌다"고 밝혔다.
특히 연예계는 권력과 위계 구조로 피해자는 대부분 연습생과 연예인들에게 집중 돼있다. 이들에 대한 구제 마련 대책도 필요하다. 이에 이 사무국장은 "여성 연예인 인권 지원 센터를 지원하고 있다. 연예인 성상납·연습생 대상으로 사업주의 만행을 알리기 위한 상담소다. 현재 그런 상황에 처해있다면 상담소로 연락을 달라. 법률적·심리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수사의 가능성은 높지 않다. 고소는 '수사기관'에 대하여 소추·처벌을 요구하는 적극적 의사표시여야 한다. 그러므로 단순히 범죄피해 사실이 발생했음을 언론과 대중에 알린다고 해서 수사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사무국장은 "수사기관 판단여부를 떠나 이윤택 연출가의 '그런' 행동이 가능했던 문화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연희단거리패의 해체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며 "피해자는 얼굴을 드러내고 인터뷰까지 하며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있다. 2차 피해도 감수하겠다는 입장이다. 피해자를 꽃뱀으로 몰거나 피해를 만든 원인을 제공했다는 식의 여론몰이는 옳지 않다. 우리 사회가 남성중심적 문화에 길들여지지 않았나라는 자성과 문화적 성찰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