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월드컵 개최를 목적으로 2001년 개장한 이곳은 수도 서울에 위치한 구장으로 최대 6만6000석을 수용할 수 있는 한국 최대 규모의 경기장이다.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경기장이기도 하다. 또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전 독일과의 경기가 펼쳐진 역사적인 장소다.
축구의 대륙 유럽에서도 '성지'라 불리는 곳이 있다. 그 대표적인 곳은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과 스페인 마드리드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다. 이들 세계적 구장처럼 서울월드컵경기장은 한국 축구의 자존심을 대변한다. 축구장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 중국의 공습이 시작됐다. 인해전술이다. 9월 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1차전 한중전에 대규모 중국 원정 응원단이 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 규모는 무려 '3만명'에 달한다. 중국의 '축구 굴기' 정책이 한중전의 뜨거운 열기로 이어지고 있다. 역대 최고 수준이다.
대한축구협회 측 관계자는 "중국축구협회가 처음에 티켓 5만장을 요구해 와 이를 거절하고 공식적으로 1만5000장으로 합의를 봤다"며 "이 외에 축구 관람을 원하는 중국 관광객들이 많다. 중국 여행사뿐만 아니라 국내 여행사들도 한중전 표 예매에 열을 올리고 있는 만큼 중국팬들이 3만명 이상 몰려 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초유의 사태다. 한국 축구의 메카가 원정 팬들에게 점령할 위기에 놓였다. 이는 한국 축구 팬들의 존심이 걸린 문제다. 태극전사들의 승리를 위해서라도 팬들의 전쟁에서 먼저 승리해야 한다. 이곳이 '한국 축구의 땅'이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슈틸리케 감독 "한국팬들로 꽉 찬 경기장을 보고 싶습니다"
"우리의 홈구장인 서울월드컵경기장이 중국 팬들로 뒤덮일 수 있습니다. 중국 팬 3만명 이상 올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비를 해야 합니다."
울리 슈틸리케(62)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이 중국전을 앞두고 한국 축구팬들을 향해 호소한 얘기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어 "많은 한국팬들이 경기장을 찾아 한국 선수들에게 힘을 줬으면 합니다. 홈경기에서 야유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한국팬들로 꽉 찬 경기장을 보고 싶습니다"고 바람을 전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사실 승패에 대한 고민이 크지 않은 중국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한국은 역대 전적에서 중국에 30전 17승12무1패로 압도적 우세를 점하고 있다. 중국이 아무리 투자를 많이 하고 축구 발전에 노력을 한다고 해도 아직 대표팀 수준은 한국에 한참 떨어지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변이 없는 한 한국의 손쉬운 승리가 예상된다.
하지만 이번 중국전에는 승패보다 중요한 것이 걸려 있다. 한국 축구의 자존심이다.
슈틸리케 감독이 목소리를 높인 이유는 '팬들의 전쟁'이 될 응원전에 한 명이라도 더 와 주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한국 축구의 '성지'인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중국팬들에게 내줄 수 없다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최근 국가대표팀을 향한 열기가 예전 같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 축구의 '상징'이었던 박지성(35)이 대표팀에서 은퇴한 뒤 흥행적인 측면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14 브라질월드컵 참패도 큰 역할을 했다. A매치가 흥행보증수표라는 것도 옛 말이 된지 오래다. 가장 최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A매치인 자메이카전(2015년 10월 13일) 관중은 2만8105명이었다. 3만명을 넘지 못했다.
대한축구협회의 예상대로 3만명 이상의 중국팬들이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채운다면 성지(메카)는 중국에 함락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시아 최다인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룩한 위대한 한국 축구 역사에 하나의 오점을 남기는 것이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이 원정구장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를 위해 한국 축구팬들이 힘을 모으고 있다. 각종 인터넷 사이트와 SNS에 '중국에 안방을 내줄 수 없다'는 의지가 섞인 메시지를 올리고 있다. 협회도 관중 동원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티켓 판매를 한국인에게 먼저 시작했고, 새로운 응원구호를 만들고, K리그와 연동해 할인을 해주는 등 많은 이벤트를 개최하며 축구팬들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있다.
◇6만명도 가능하다
이런 노력이 희망으로 다가오고 있다. 협회의 관계자는 25일 "현재 예매 상황을 보면 긍정적이다. 한국팬들의 반응이 좋다"며 "아무래도 이전 중국전 분위기와 많이 다르다. 역대 가장 치열한 중국전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팬들 역시 의지가 강하다. 많은 팬들이 올 것 같다"고 예상했다. 이어 그는 "6만명 이상도 내심 기대해볼만하다"고 내다봤다. 중국팬 3만명 이상이 오고 한국팬이 3만명 이상 경기장을 찾는다면 거뜬히 6만명을 달성할 수 있다. 6만명이라는 숫자는 '흥행 대박'을 의미한다.
한국 축구팬들이 슈틸리케 감독을 위해 보답하는 기회도 될 수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2014 브라질월드컵 참패로 무너져가는 한국 축구를 다시 살려냈다. 그는 휴가까지 반납하며 한국 축구를 위해 노력했다. 아시안컵 준우승, 동아시안컵 우승, 월드컵 2차 예선 전승 등의 결실도 선물했다. 한국 축구팬들은 그를 향해 '갓틸리케'라 불렀다.
이제 그에게 보답할 차례다. 팬들이 '갓틸리케'를 위해 행동으로 보일 때다. 슈틸리케 감독이 처음으로 팬들을 향해 중국의 역습을 막아달라고 부탁했다. 말로만 찬양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슈틸리케 감독에게 힘을 줄 수 있는 행위를 해야 한다. 바로 경기장을 찾아가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이다. 이는 대표팀을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향한 첫 관문에서 팬들의 성원보다 큰 힘이 되는 것은 없다.
사실 3만 중국팬들의 운집이 그리 나쁜 상황도 아니다. 중국팬들 앞에서 슈틸리케팀이 시원하게 중국을 무너뜨린다면 이보다 통쾌한 일도 없다. '축구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중국팬들이 보는 앞에서 정확하게 전달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