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를 두려워 할 줄 아는 선수는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메이저리그 우승반지를 갖고 있는 국내 유일한 선수이지만, 일본 볼보이의 훈련을 보며 러닝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다. 'BK' 김병현(35·KIA)의 선전은 모두 이유가 있었다.
삼성-KIA전이 예정됐던 지난 19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는 오후 3시부터 비가 흩날렸다. 일기예보를 알고 있는 KIA선수단은 평소보다 일찍 훈련을 한 뒤 선수단으로 들어갔다. 비교적 한산한 외야에 빨간색 땀복을 입고 러닝을 하는 선수가 눈에 띄었다. 김병현이었다. 온몸이 비에 젖었지만 달리기는 40여 분 동안 쉼없이 이어졌다.
나름대로 규칙이 있는 듯했다. 왼쪽 폴대 인근부터 우익수 쪽 관중석까지 외야 곡선 트랙을 천천히 달리기가 시작이었다. 이후 거리를 좁혀가며 속도와 강도를 조금씩 높혀갔다. 'BK'는 지난 4월 넥센에서 KIA로 이적한 뒤 하루도 빠짐없이 같은 내용으로 달리기를 해왔다. 훈련을 마친 뒤 더그아웃에서 만난 그는 등판 후 요일별로 러닝 패턴이 약간 달라진다고 했다. 김병현은 "등판 이튿날에는 장거리를 오래 뛴 뒤 중거리, 다시 단거리 순서로 러닝을 한다. 둘째날에는 왕복으로 뛰기를 하고 셋째 날에는 중단거리도 뛴다"고 했다.
달리기의 중요성을 다시금 떠올린 계기가 있었다. 김병현은 지난 겨울 전 소속팀 넥센과 일본 오키나와로 스프링캠프를 떠났다. 연습경기를 하던 그는 현지에서 볼보이를 맡고 있던 일본 꼬마들의 달리기를 봤다. 김병현은 "열심히 볼보이를 하던 일본 소년들이 쉬는 시간에는 야구장 오르막기를 오르내리며 달리기를 하더라. 1시간 가량을 그렇게 뛰는 걸 봤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에서 야구를 하는 학생들 중에서는 몸이 퍼진 친구가 별로 없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아 나도 학생 때는 저렇게 뛰었지' 라며 내 어린 시절 생각이 났다. 러닝은 원래 전체적으로 운동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몸이 확실히 달라지는 걸 느낀다고 한다. 김병현은 KIA 선발의 축을 맡고 있다. 지난 10일 광주 롯데전에서 6이닝 3피안타(1피홈런) 6탈삼진 2실점 하며 시즌 3승째를 올렸다. KIA 이적 후 가장 많은 공과 이닝을 소화하며 선발 투수의 본분을 다했다. 1년 2개월여 만에 퀄리티스타트(QS·6이닝 3실점 이하)를 기록하며 팀에 큰 희망을 안겼다. 투구수가 100개를 넘어섰지만 공 끝에 힘이 실려있었다. 그는 "지난 7월 날씨가 정말 덥고 지칠 때도 거르지 않고 뛰었다. 지금 내 처지가 덥다고 쉬고 말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이번 시즌 내내 하루도 빼놓지 않고 러닝을 했는데, 확실히 힘이 붙는 걸 느낀다. 효과가 있다. 여기에 오전에는 하루 한 시간씩 요가를 거르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KIA는 학습효과까지 보고 있다. 어린 선수들이 김병현의 훈련 자세와 러닝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며 자연스럽게 배워나간다는 것. 선동열(51) KIA 감독은 "베테랑은 다르다. 김병현이 뛰는 걸 보면서 다른 선수들도 달리기의 중요성을 알게 되는 듯 싶다"며 만족감을 보였다. 김병현은 "후배들에게 일부러 귀감이 되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 목표대로 훈련을 소화할 뿐이다"며 몸을 낮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