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수 선수는 거의 한 쪽으로만 찬다는 데이터가 있었어요. 김재성 선수는 한 달 전에 이미 상대해봤고…. 박희철 선수는 너무 속이려는 동작을 취해서 예측을 했죠."
FC서울 골키퍼 유상훈(25)은 28일 전화인터뷰에서 전날의 환희를 차근차근 복기했다.
유상훈은 27일 포항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홈경기에서 환상적인 선방을 선보였다. 두 팀은 전·후반과 연장을 득점 없이 마쳤고 승부차기에서 유상훈은 포항 황지수-김재성-박희철의 킥을 3번 연속 막아냈다. 포항 황선홍, 서울 최용수 감독 모두 "3연속 선방은 본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거짓말같은 활약이었다. 유상훈은 지난 달 16일 포항과 FA컵 16강에서도 승부차기에 돌입해 한 차례 선방을 해내며 팀의 4-2 승리를 이끌었다. 포항은 한 달 사이 두 번이나 유상훈의 벽에 막혀 울었다.
이번 승리는 치밀한 분석과 유상훈의 배짱이 어우러진 하나의 작품이었다.
승부차기 전 '황지수는 거의 왼쪽 아래(이하 키커 기준)로 찬다'는 자료가 유상훈에게 전달됐다. 사실 유상훈은 황지수의 킥 직전 잠시 망설였다. 그는 "이미 FA컵 때 포항이랑 승부차기를 해서 상대가 역이용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분석을 믿기로 했다"고 털어놨다. 황지수의 킥은 빠르고 강했지만 유상훈은 막아냈다. 2번 키커 김재성이 나오자 유상훈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FA컵 때 김재성 선수가 1번 키커였는데 오른쪽 바깥으로 찼다. 몸을 날렸는데 손 맞고 들어갔다. 이번에도 같은 쪽으로 차리라 생각했다." 김재성의 킥은 골키퍼가 막기 힘든 코스로 날아갔지만 유상훈은 예측을 다 끝내놓았기에 멋지게 낚아챌 수 있었다. 3번 키커 박희철이 문제였다. 데이터에 없던 선수였다. 유상훈은 "킥의 방향과 높낮이가 분석된 선수는 데이터를 따르고 왼쪽·오른쪽을 섞어차는 선수는 제가 판단하기로 돼 있었다"며 "박희철 선수는 아예 자료가 없었다"고 했다. 결정은 유상훈의 몫이었다. 박희철이 과도하게 오른쪽으로 차려는 동작을 취하는 게 보였다. 유상훈은 본능적으로 속임수임을 간파했다. 반대편으로 몸을 날렸고 정확히 들어맞았다.
유상훈은 박희철의 킥까지 막아낸 뒤 골대 뒤 포항 서포터를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아무리 야유해도 소용 없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이날 승부차기는 원정 서포터석 앞 골대에서 진행됐다. 규정상 승부차기 골대 선택은 주심의 재량사항이다. 서울은 승부차기에서 홈 이점을 전혀 기대할 수 없었다. 유상훈이 원정 서포터의 야유를 온 몸으로 받아내야해 오히려 불리했다. 유상훈은 "별로 신경 안 썼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골대 안에서는 아무 것도 안 들린다. 골대 밖에서 기다릴 때는 안 들을 수 없고 가운데 손가락 욕도 봤다. 하지만 앞서고 있어서 괜찮았다"고 여유를 보였다.
준결승 진출이 확정되자 서울 선수들은 일제히 유상훈을 끌어안았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실축을 한 주장 김진규(29)는 "네가 날 살렸다"며 고마워했다. 서울의 '수호신'은 이렇게 탄생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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