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성하는 '구해줘'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다. 백발에 흰 옷, 흰 넥타이, 흰 구두 심지어 백색 분장까지 엄청난 카리스마를 뿜었다. 여기에 연기까지 더해지며 더할나위없는 '구선원 교주'가 됐다.
OCN '구해줘'는 지난 24일을 끝으로 종영했다. 결국 조성하(백정기)는 불에 타 죽는 결말을 맞이했다. 조성하는 "살려달라고 작가님께 말했는데 결국은 죽었다"며 결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어필했다.
그렇다면 조성하가 생각하는 백정기는 정말 악인이었을까. 또 백정기가 임상미에게 느끼는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조성하는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취재진을 만나 인터뷰를 나눴다.
- 제작발표회에서 '그것이 알고 싶다' 사이비 편을 보고 '구해줘'에 관심을 가졌다고 했다. 이 작품을 선택한 기준으로 삼았나.
"그런 건 딱히 아니다. 사이비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어떻게 위로하고, 구해줄 것이며, 또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할 것이냐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볼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어서 선택했다. 웃지 못할 일들이 많은데 빠져드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현실이다. 많은 디테일을 담아내진 못했지만 얼추 사이비의 전형을 모르시는 분들에게 알리미 역할을 한 것 같다. 이 작품을 선택하길 잘했다."
- 백정기는 맹목적인 악인인가.
"아마 백정기는 자신이 악인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세상은 다 누구나 자기의 욕심과 욕망을 채워간다. 사회의 구성은 이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백정기는 교단을 만들어서 신격화되고 그런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고 자신의 손끝 눈빛에 쓰러지는 모습을 봐야 행복한 사람이다. 욕구와 욕망 채우려고 투자를 하고 연구를 해 구선원이라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자기는 정당한 노력을 해서 정당한 위치에 선 것으로 생각하는 망각자이고 망상을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정신병자다."
- 서예지와의 호흡은 어땠나.
"시작하면서 마지막까지 가장 많은 호흡을 했던 배우다. 그래서 현장에서 많이 친밀해졌다. 마지막 촬영 때까지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플랜을 이야기하고 공유하는 사이가 됐다. 예지는 어려운 역할인 상미를 잘 소화했다. 많은 눈물신과 액션신, 차 날라가는 것 등을 다 견디고 잘 마무리 해줘서 감사하다."
- 백정기가 임상미에게 느끼는 감정은 무엇일까.
"이렇게 얘기하면 다들 소름 돋는다고 하는데, 백정기에게 임상미는 사랑이었을 거다.(웃음) 전략적으로 종교 단체를 운영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기독교의 동정녀 마리아처럼 역사적인 순고함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영모라는 직책을 만들었다. 백정기는 드라마 처음부터 끝가지 지고지순하게 순애보를 가지고 상미 하나만 바라봤다. 다른 여자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임상미 외엔 다른 여자를 터치하거나 눈빛을 보내거나 겁탈하는 장면이 없었다. 그 집념과 집착이 그만의 사랑법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백정기라는 악당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건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엔 백정기의 사랑이 아니라 악행이다. 있어서도 안 된다."
- 예지 씨가 무서워 하지않던가.
"편하게 생각하더라. 장난도 많이 쳤다. 삼촌이라고 불렀다.(웃음)"
- 백정기에 대한 연민이 있나.
"백정기를 좋아하지 않아서 연민하고 싶지 않다. 세상에서 남 사기치는 사람이 가장 싫다. 진실성이 없는 사람을 싫어한다. 백정기 같은 사람이 옆에 있었다면 아마 혼내줬을 것 같다. 다만 백정기를 백정기 답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쉬운 역할도 아니고 선례가 있지도 않았다. 나에겐 새로운 도전이고 멋진 작업이었다."
- 고구마 전개라는 말이 있었다.
"대량으로 고구마를 심는 밭이었던 것 같다.(웃음) 좀더 시원하게 제공할 수 있지 않나 생각했는데, 감독님과 제작자들이 사이비에 대한 경험을 한 적이 있더라. 아픔을 느낀 적이 있다보니 그 아픔을 좀더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만약 사이비에 빠진 가족을 건져올 수 없다면 얼마나 답답했겠나. 그 암담함은 표현할 수 없을 거다. 시원하게 그렸다면 그 아픔을 겼은 사람에겐 누가 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 어두운 연기를 하다보면 지치거나 감정소모가 심하진 않나.
"캐릭터의 다운된 에너지를 맞추려면 내 에너지도 내려야 한다. 그래야 보는 사람이 똑같다고 느낀다. 10kg 뺐다가 찌우는 걸 반복하다 보면 몸이 역반응하면서 고장이 난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마찬가지다. 깊은 연기를 하거다 감정의 유동이 많으면 체력 소모가 크고 정신적으로 지친다. 어떻게 회복하느냐가 문제다. 너무 침울하고 다크한 작품은 힘들긴 하다."
- 그 감정선이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끼치나.
"그정도 까진 아니다. 처음 연기를 시작하는 신인들은 그럴 수 있다. 평소에도 캐릭터처럼 살아야돼라고 생각하고 자기 마취를 하면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 고수는 들어갔다 나왔다 한다.(웃음)"
- 그럼에도 어두운 작품을 하는 이유가 있다면.
"사람이 사는 일이라는게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관계와 관계들이 만나는 거라 도와줄 때도 있고 작품이 좋아서 할 때도 있다. 모든 것을 칼로 자르듯이 살아갈 수 없다.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좋은 인재들을 잠시 도울 수도 있다. 그들에게도 진정으로 도움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인생 일대 최고의 작품이 되진 않더라도 함께 사회의 일면을 진실성 있게 담아낸다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