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48)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번외 경기'로 펼쳐진 장외 '스파이 전쟁'에서 판정승을 거뒀다.
운명의 스웨덴전을 하루 앞둔 17일(한국시간), 경기 전 러시아 니즈니노브고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선 때 아닌 '스파이 논쟁'이 벌어졌다. 한국의 오스트리아 전지훈련, 그리고 스위스의 베이스 캠프 입성 때부터 미디어를 통해 점화돼 정보전으로 이어졌던 스파이 논란이 양 팀 감독이 나선 기자회견 자리에서 본격적인 '장외 전쟁'으로 번진 셈이다.
사실 스파이 논란은 '메인 이벤트'였던 한국-스웨덴의 조별리그 1차전의 '사전 이벤트'나 마찬가지였다. 시작은 스웨덴이 러시아 겔렌지크에 차린 베이스 캠프였다. 스웨덴의 베이스 캠프는 사방이 뻥 뚫린 구조로 되어있어 어디서든 쉽게 훈련 내용을 볼 수 있었다. 그러자 스웨덴 매체들은 한국이 스파이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보도했고, 마르쿠스 베리(32·알 아인) 등 스웨덴 선수들은 "비공개 훈련 과정을 존중해주길 바란다"며 경고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러나 정작 스웨덴이 한국의 전지훈련지인 오스트리아 레오강에 전력 분석관 라세 야콥손을 파견해 신태용호의 훈련을 염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스파이 전쟁'부터였다. 야콥손은 레오강에서 현지 독일인의 집을 빌려 한국의 모든 훈련을 지켜봤다고 폭로했다. 이 때문에 한국은 베이스 캠프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파르타크 스타디움 훈련 때 현지 경찰의 도움을 얻어 쌍안경으로 스웨덴의 '스파이'를 찾느라 노심초사하기도 했다.
이런 내용들이 양국 언론을 통해 서로에게 알려지면서 어느새 '스파이 전쟁'은 경기 못지않게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기자회견 때도 스웨덴 취재진이 한국보다 먼저 기자회견에 나선 야네 안데르손(56) 스웨덴 축구대표팀 감독에게 "스파이 행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을 던져 2라운드가 시작됐다. 양 팀 감독에게 연달아 스파이 질문이 쏟아지자 사정을 모르는 다른 나라 기자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대체 스파이 얘기가 왜 나오는 거냐, 한국과 스웨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냐"고 한국 취재진에게 묻기도 했다.
안데르손 감독은 "상대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스파이'들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해 스파이의 존재를 인정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스파이에 관한 질문이 이어지자 "비공개 훈련이란 걸 몰랐고 멀리서 지켜봤다고 했다. 오해가 있었다면 사과하겠다"고 한풀 꺾인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경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모두들 상대를 분석하기 마련"이라며 항변을 덧붙이기도 했다.
안데르손 감독의 입에서 해명과 사과가 나왔지만, 한 시간 뒤 이어진 한국 기자회견에서도 화두는 '스파이'였다. 외신들은 신 감독에게 집중적으로 스파이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스웨덴과 서로 스파이 활동을 한 것에 대해 설명해달라', '오스트리아에서 있었던 스웨덴의 스파이 활동에 대해 말해달라'는 질문이 쏟아졌다.
신 감독은 경기 전날 터져나온 '스파이' 관련 질문들에 살짝 당황한 듯 하면서도 "모든 감독의 심정이 비슷할 것이다. 서로 이기기 위해 뭐라도 해야했고, 감독으로서 할 수 있는 정상적인 일"이라며 온건한 답변을 내놨다. 레오강에서 비공개 훈련을 염탐한 야콥손에 대해선 "볼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니 호기심에서 보지 않았나 싶다"며 "알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에선 직업 정신(?)이 투철하다고 본다. 꼭 나쁘게만 생각하지 않는다"고 대꾸하는 여유도 보였다.
일단 '번외 경기'로 펼쳐진 장외 스파이 전쟁에선 안데르손 감독의 사과를 받아냈으니 신 감독의 '판정승'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번외 경기'에서 백 번을 승리해봤자 본 경기에서 패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법. 경기 시작 전부터 스파이 논란으로 말 많고 탈 많았던 두 팀이 시원하게 앙금을 털어내는 방법은 이날 경기서 두 팀이 최상의 전력으로 맞부딪혀 좋은 경기를 펼치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