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를 챙긴 투수들이 늘상 하는 말 같지만, 실제 포수의 공은 이런 의례적 언사로 표현되기엔 부족함이 있다. SK는 이런 포수의 톡톡한 공로에 힘입어 9월 들어 무섭게 기세를 올리고 있다. 베테랑 포수 정상호(32)는 노련함으로 경험이 부족한 신예 투수부터 한국 무대가 낯선 외국인 투수까지 아우르며 마운드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
SK는 지난 5일 문학 롯데부터 4연승을 달리며 5위까지 올랐다. 이 기간 연승의 변수는 4·5선발의 선전 여부였다. 그리고 시즌 내내 주인을 찾지 못하던 자리에 나선 여건욱(28)과 문광은(27)은 우려를 털어내는 최고 투구로 승리 투수가 됐다. 이들은 경기 후 하나같이 "(정)상호 형의 리드대로 던졌다"고 소감을 전했다. 두 투수 모두 어리진 않지만 선발 경험이 부족했고 정상호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이들에게 힘이 됐다.
정상호는 후반기 들어 선발 출장 기회(30경기 중 22번)를 자주 얻고 있다. 전반기(63경기 중 37번)에 비해 비율이 높아졌다. 시즌 내내 뜨거운 타격감을 유지하며 주전 포수로 나서던 이재원(26)에게 슬럼프가 찾아오면서 수비 안정에 무게를 둔 기용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팀의 승리가 많아졌다.
물론 SK 상승세의 원동력은 불방망이를 내뿜고 있는 타선의 힘이 크다. 그러나 안정된 마운드가 그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SK는 전반기 팀 평균자책점 5.84에서 후반기 5.21로 크게 낮아졌다. 특히 선발 투수는 5.98에서 5.08로 그 폭이 더욱 컸다. 물론 나아진 성적은 투수들이 잘해지만 이들의 체력이 떨어지는 후반기임을 감안할 때 포수 리드에 변수가 상승세를 가져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정상호가 선발로 나선 22경기에서 팀 평균자책점은 4.73으로 확연히 낮았다. 무엇보다 팀의 패배가 5번에 불과했다.
김태형(47) SK 배터리 코치는 "베테랑의 포수에게 볼 배합에 대한 조언을 하는 건 의미가 없다. (정)상호 정도 되면 투수가 1회에 던진 공만 받아봐도 그날 컨디션과 리드 방향을 정할 수 있는 수준이다. 당연히 안정감이 있을 수 밖에 없다"고 평가한다. 투수들의 믿음과 같은 맥락이다. SK 상승세에 분명 정상호라는 숨은 공신이었다.
정작 본인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상호는 "우리 팀은 투수와 포수 간의 소통이 좋다. 최대한 많은 대화를 하고 투수가 편하게 던질 수 있도록 도울 뿐이지 내가 특별히 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의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 제 몫을 하겠다는 의지는 다부졌다. 그는 "팀이 중요한 시기에 있기 때문에 더욱 집중력을 발휘하려 한다. 타선에서 큰 도움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나가는 이유인 수비 쪽에서는 제대로 역할을 해내려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상호는 2009년 SK의 19연승을 이끈 안방마님이다. 누구보다 상승세의 감을 잘 알고 있다. 재개되는 시즌은 더욱 치열한 4강 경쟁이 예상된다. 정상호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