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이 비셀 고베(일본)를 연장 끝에 꺾고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결승 진출을 확정한 13일, K리그 팬들은 또 한 번 아시아 정상에 서는 한국 팀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환호했다. 울산은 공식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결승 진출 소식을 알렸고, K리그 팬들이 응원 댓글을 달았다. '국가 대항전' 성격을 띠는 ACL의 특성이 잘 드러난 모습이었다.
울산을 응원하는 건 울산, 그리고 K리그 팬들만이 아니었다. 결승 진출이 확정된 순간부터 울산의 SNS는 어마어마한 '화력'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번역기를 돌려도 뜻을 쉽게 알기 어려운 페르시아어 응원 메시지들이 울산의 SNS 댓글창을 도배했다. 아예 울산의 우승을 기원하는 이란 계정까지 생겼다. 이 계정은 태극기와 이란 국기를 함께 걸어둔 사진, 울산의 경기 모습과 호랑이 사진, 엠블럼 등을 올려놓고 페르시아어와 한글로 '울산 현대가 ACL에서 우승하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적어 놓았다.
이란에서 쏟아진 응원 메시지의 작성자들은 이란 프로축구 양강 중 한 팀인 에스테그랄의 팬들이다. 에스테그랄은 이란 테헤란을 연고로 하는 팀으로, 이번 ACL 결승에서 울산과 우승을 놓고 다투는 페르세폴리스와 더비 라이벌 관계다.
두 팀은 똑같이 테헤란을 연고로 삼고 있으며 '원정팀의 악몽'으로 불리는 7만 8000여 석 규모의 아자디 스타디움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 페르세폴리스가 진보적인 성향의 노동자와 서민 계층의 지지를 얻는 반면, 에스테그랄은 보수적인 성향의 중상류층이 지지하는 팀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두 팀의 맞대결은 전쟁에 가깝다. 지난 50여 년간 두 팀은 '테헤란 더비'로 불리는 전쟁을 계속 치러왔다. 월드사커는 2008년 '테헤란 더비'를 아시아 최고의 더비 매치로 선정하기도 했다. 서로에 대한 이런 라이벌 의식이 결승을 앞두고 페르세폴리스의 상대 팀인 울산을 응원하게 하는 뜻밖의 상황을 만들어냈다. 에스테그랄이 16강에서 조기 탈락했지만 페르세폴리스는 결승에 오른 상황에서, 라이벌의 우승을 바라지 않는 에스테그랄 팬들의 '화력'이 울산 SNS로 집중된 것이다. 페르세폴리스 팬들 역시 이에 맞불을 놓고 있어 SNS상에서 또 다른 '테헤란 더비'가 한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