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재의 까칠한 축구]KFA '적폐' 뒤에 가려진 히딩크 측근의 '월권'



대한축구협회(KFA)는 지금 '적폐'의 아이콘이 됐다.

오랜 기간 쌓여온 KFA에 대한 불신과 실망감이 거스 히딩크(71)라는 '공정의 상징'을 통해 한 목소리로 터져 나오고 있다. 정몽규(55) 회장의 무책임과 김호곤(66) 기술위원장의 거짓말 논란, 대표팀의 무기력한 경기력까지 총체적 난국이다.

KFA를 두둔할 생각은 없다. 지탄 받아 마땅하다. KFA가 적폐라는 것 역시 맞는 표현이다. 정 회장을 비롯한 KFA 수뇌부들은 앞장서서 책임지고 KFA 변화와 개혁을 이끌어야 한다. 분노한 민심을 외면한다면 미래는 없다.
 
그리고 이번 히딩크 사태에서 꼭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히딩크 감독 최측근이라는 노제호 히딩크재단 사무총장의 행보다.

히딩크 사태로 모든 이슈가 KFA로 몰렸고, '국민 욕받이'가 된 상황에서 잘 보이지 않지만 냉정하게 노 총장의 행보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나쁜 짓을 한 죄인을 상대한다고 해도 옳지 않은 과정과 절차를 정당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적폐 KFA를 상대한 노 총장이 그랬다. 나쁜 상대를 향해 나쁜 방법을 썼다.

 

"부회장님~ 2018 러시아월드컵 한국 국대 감독을 히딩크 감독께서 관심이 높으시니 이번 기술위원회에서는 남은 두 경기만 우선 맡아서 월드컵 본선진출 시킬 감독 선임하는 게 좋을듯합니다. 월드컵 본선감독은 본선 진출 확정 후 좀 더 많은 지원자 중에서 찾는 게 맞을 듯 해서요~~~ㅎ"

노 총장이 김 위원장에게 보낸 SNS 메시지다. 절차와 방법 그리고 내용 모두 틀렸다. 공식 제안으로 볼 수도 없다. 한 국가의 대표팀 감독을 결정하는 것이 이런 메시지 하나로 좌지우지될 수는 없는 일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 메시지 속에 '월권행위'가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최종예선 2경기를 '땜빵' 감독으로 한 뒤 본선부터 히딩크 감독이 맡겠다는 의미다. 한국 대표팀 감독 로드맵을 왜 '외부인' 노 총장이 정하는가. 심각하고 위험한 장면이다. 국가적 영웅 히딩크 감독이 아닌 다른 감독이 이런 요구를 했다면 엄청난 비판을 받았을 것이 자명하다. 다시는 이런 행위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월드컵 본선이 좌절될 수 있는 상황에서 땜방용으로 나설 감독은 없다. 그런 희생양을 만들어서도 안 된다. 희대의 역적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지도자 인생을 걸고 나선만큼의 대가가 따라야 하는 것이 '정도'다. 최종예선 2경기 지휘봉과 월드컵 본선 지휘봉은 연결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노 총장은 희생양만 찾았다.  
 
노 총장은 '거짓말'도 했다.

월드컵 본선 진출이 확정된 뒤 바로 히딩크 사태가 터졌다. 당시 노 총장은 본지를 비롯한 많은 언론을 통해 "히딩크 감독의 한국 대표팀 감독 관심에 대해 KFA와 접촉을 한 적은 없다. 월드컵 본선이 확정됐으니 KFA에서 먼저 연락오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이후 말이 바뀌었다. 노 총장은 이전부터 김 위원장과 몇 차례 연락을 취해왔다고 밝혔다.
 
왜 이런 거짓말을 했을까. 김 위원장과 연락을 취한 것을 숨긴 것은 결국 김 위원장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김 위원장의 거짓말만 나쁜 거짓말이고 노 총장의 거짓말은 착한 거짓말인가.

가장 중요한 부분은 노 총장만이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히딩크 감독의 입에서 단 한 번도 한국 대표팀 '감독'에 대한 의사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으로서 감독은 어려울 수 있다. 당신들이 거론한 특정한 자리보다 조언하는 쪽에 더 가깝다."

히딩크 감독이 지난 9월 '직접' 한 말이다. 또 프랑스에서 KFA와 만나 '직접 소통'한 자리에서도 "공식 직함을 맡을 수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이 미팅에서도 '감독'이란 단어는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히딩크 감독이 감독직을 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노 총장의 '간접화법'에서 시작된 이 말이 진리가 됐다. 히딩크 감독이 '직접화법'으로 말을 해도 측근인 노 총장의 간접화법을 믿는 신기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KFA를 향한 불신이 만든 현상이다. 

오히려 일부 축구팬들은 '음모론'을 제기한다. KFA가 히딩크 감독에게 압력을 넣었을 거라고. 입막음을 시킨 거라고. 세계적 거장 히딩크 감독은 KFA가 흔들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KFA 능력을 과대평가한 것이다.
 
노 총장의 간접화법이 '애매함'으로 무장해 혼란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히딩크 감독에게 전해들은 'Dedication(헌신)'이라는 정의를 오직 '감독'으로 해석했다. 자의적 해석이라 볼 수 있다. 간접화법의 폐해다.

많은 축구인들과 미디어가 의구심을 품은 이유다. 세계적 명장인 히딩크 감독은 그 누구보다 세계 축구의 질서와 국제스포츠 관례를 잘 알고 있다.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엄연히 계약이 돼 있는 감독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들어오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도의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히딩크 감독은 원칙과 철칙을 지키기로 유명한 감독이다.

그래서 많은 축구인들이 "히딩크 감독이 직접 그런 의사를 밝혔는지 확인하는 것이 먼저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히딩크 감독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황상 히딩크 감독이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했던 것이다.

노 총장의 간접화법이 아닌 KFA와 히딩크 감독이 직접 소통한 'Dedication' 의미는 달랐다.

히딩크 감독은 비공식적으로 한국 대표팀을 위해 어떤 조언이나 가이드도 해 줄 수 있다고 약속했다. 이것은 헌신이 아닌가? 히딩크 감독 본인이 직접 "KFA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는데 대리인이 왜 반발하고 나서는가. 히딩크 감독의 순수한 의지를 노 총장이 왜곡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또 노 총장은 KFA와 히딩크 감독의 러시아 회동이 취소됐다는 말만 흘리며 또 다시 혼란을 부추겼다. 프랑스 미팅 이야기는 쏙 뺀 채 말이다.

이런 행보를 보이니 히딩크 감독이 한국 대표팀 감독이 되면 노 총장이 사업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오해가 나오는 것이다. 국정감사 질의도 이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히딩크 감독이 먼저 적극적으로 의사를 밝힌 것이 아니라 노 총장이 히딩크 감독에게 먼저 요청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앞으로 KFA와 히딩크 감독은 '직접 소통'하기로 약속했다. 직접 소통하니 오해도 억측도 논란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해도 풀었고 좋은 관계도 유지하기로 했다. 이제 노 총장은 히딩크 감독 앞으로 나서기보다 뒤로 한 발 물러나 '헌신'할 때인 것 같다.

본질을 희석시킬 생각은 없다. 히딩크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김 위원장에게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김 위원장은 노 총장이 접촉한 사실을 부인했고, 거짓말을 했으며 히딩크 측과 적극적인 소통, 공론화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그렇다고 노 총장의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분명 이 사태를 키우는데 역할을 했다. 도의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김 위원장과 비교해 짊어진 책임의 무게가 가볍다 해서, 모든 비난과 책임론이 김 위원장으로 향한다고 해서, 김 위원장의 큰 잘못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노 총장의 행동을 정당화 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최용재 기자 choi.yongjae@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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