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인'으로 돌아온 선동열(51) 전 KIA 감독이 말했다. "소주 한잔 하고 있어요. 저는 괜찮습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평생을 살아오며 가장 힘겨운 시간을 걷고있을 사람이 그리 괜찮을 것 같진 않았다.
KIA는 지난 25일 선동열 감독의 사퇴를 공식 발표했다. 지난 19일 2년간 총액 10억6천만원(계약금 3억원, 연봉 3억8천만원)에 재계약을 맺은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뤄진 사임이었다. 모두가 놀랐다. 구단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날 낮에 함께 식사자리를 가졌고, 감독님께서 사임 이야기를 꺼내셨다. 참담한 마음이다. 거듭 만류 했으나 본인께서 물러서는 여러 이유를 드셨다. 끝내 붙잡지 못했다"고 전했다.
지난 일주일이 수 십년 세월같았다. 내년시즌 '리빌딩'을 목표로 재신임을 받았지만 팬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구단 홈페이지에서는 수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릴레이 청원이 봇물을 이뤘다. 선동열 감독은 이례적으로 직접 편지를 작성해 팬 게시판인 '호랑이사랑방'에 띄웠다.'팬 여러분께 드리는 글'이란 제목의 편지에 "재계약 소식으로 팬 여러분께 심려를 끼쳤다. 실망하시고 질타하시는 모습을 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 지난 3년 동안 무얼 했느냐는 팬들의 질타가 많다. 아프게 받아들인다"며 심경을 담았다. 지난 23일에는 안치홍의 군 입대 회유과정과 관련한 말이 흘러나오며 선수를 협박한 감독으로 낙인 찍혔다.
평생 '선동열'이라는 자부심을 안고 살았다. 광주 출신이었던 그는 1990년대 해태에서 뛰며 한국을 대표하는 '국보 투수'로 큰 사랑을 받았다. 1996년 일본 주니치 진출 후에는 '나고야의 태양'으로 불렸다. 현역에서 물러난 뒤에는 삼성의 사령탑에 올라 팀을 프로야구 최고의 구단으로 성장시켰다. 삼성에서만 6시즌 동안 지도자로 활동하며 5번이나 가을야구에 진출했다. 또한 3차례 한국시리즈 무대에 나가며 최고의 선수이자 최고의 감독으로 인정받았다.
2012년 KIA의 수장으로 부임하면서 가시밭길을 걸었다. 3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탈락을 맞이한 그는 '타이거즈' 출신으로서 명예를 회복하고 싶어했다. 결국 타이거즈 밖으로 걸어나온 그는 "저는 괜찮다"는 말로 마음을 추스리고 싶어했다.
이렇게 물러나지만, 그가 광주 출신 타이거즈맨으로서 마지막으로 남긴 순정만은 알아줘야 할 듯 싶다. "타이거즈 유니폼을 벗지만 영원한 타이거즈 팬으로서 응원을 아끼지 않겠다. 야구명가 타이거즈의 부활이 조속히 이루어지도록 미력한 힘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 이곳 광주는 나의 야구인생을 시작한 곳이라 남다르게 애착이 갔다. 꼭 좋은 성적을 올려 팬들을 웃음짓고 기쁘게 해 주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