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와 LA 다저스 마이너리그팀이 연습경기에 한창인 5일(한국시간). 다저스 훈련장인 미국 애리조나주 글렌데일 캐멀백랜치에 오렌지색 한화 유니폼을 입은 외국인 팬 한 명이 나타났다. 그 팬이 입고 있는 유니폼 뒤에는 7년 전 한화 에이스로 활약했던 류현진의 이름과 등번호 '99'가 새겨져 있었다.
류현진은 지난 시즌이 끝난 뒤 토론토와 4년 계약을 하고 캐나다로 떠났다. 그러나 한화와 다저스는 모두 류현진이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몸 담으면서 애착을 느꼈던 팀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99번 역시 류현진이 두 팀에서 공히 달았던 등 번호다. 이 외국인 팬의 '한화 류현진' 유니폼이 유독 특별하게 다가왔던 이유다.
알고보니 그는 어머니가 한국인인 하프 코리안. 어머니의 고국인 한국을 찾아 KBO 리그 경기를 직접 본 적이 있을 정도로 야구를 좋아하는 팬이다. 이날 캐멀백 랜치를 찾게 된 계기도 남다르다. 원래는 다저스의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라이벌 팀이자 숙적인 샌프란시스코를 열성적으로 응원하지만, 친구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다저스와 한화가 연습경기를 치른다는 소식을 보고 일부러 찾아왔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 팬은 "한국에서도 한화 경기를 본 적이 있어 이번에도 꼭 보고 싶었다"며 "예전에 류현진이 다저스에서 뛸 때 그가 던지는 경기를 직접 관람한 적이 있다. 정말 인상적인 투수였고, 이 한화 유니폼은 서울에 살고 있는 사촌동생에게 부탁해서 구한 것"이라고 웃어 보였다.
이날 한화 선수들은 메이저리거가 일부 섞인 다저스 마이너리그 팀을 상대로 투타 모두 훌륭한 경기력을 보였다. 주축 투수들이 총 3피안타 14탈삼진 릴레이를 펼치며 호투했고, 타선도 장단 11안타를 몰아치며 승리를 이끌었다.
이 팬은 특히 한화 선발로 나온 장시환의 투구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한화 선발 투수가 지금 4이닝 동안 점수를 주지 않고 잘 막지 않았냐"며 "공도 좋고, 정말 잘하는 것 같아 깜짝 놀랐다"고 했다. 또 여자친구와 함께 나란히 경기를 관전하면서 연신 한화 선수들의 플레이에 환호를 보내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다. 다저스 마이너리그 소속 선수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한화 선수들의 플레이를 끝까지 지켜본 뒤 한화 외국인 선수 통역 담당 직원을 찾아 "지금 타석에 있는 저 선수가 누구냐" "저 선수는 어떤 선수냐" 등의 질문을 던지며 관심을 보였다.
또 한용덕 감독은 다저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던 2013년 함께했던 코치 및 관계자들을 만나 반갑게 지난 추억을 떠올렸고, 한 다저스 선수는 3년 전 마이너리그에서 한솥밥을 먹던 제라드 호잉을 알아 보고 한화 더그아웃까지 한달음에 달려오기도 했다. 외국인 투수 듀오인 워윅 서폴드와 채드 벨 역시 과거 인연을 맺었던 다저스 선수들과 마주칠 때마다 가벼운 담소를 나누며 모처럼 '우정의 무대'를 연출했다. 한 감독은 "이곳에 오니 시설도 좋고 다들 환대해를 해줘서 나도 그렇고, 선수들도 그렇고 평소보다 기분이 좋은 것 같다"고 귀띔했다.
오렌지색 유니폼을 입은 외국인 팬부터 송광민과 정은원의 응원가를 틀어 준 다저스 관계자까지, 지루한 청백전과 반복되는 훈련에 지쳐 있던 한화 입장에선 그라운드 안팎에서 여러 모로 흐뭇한 기억을 남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