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혼은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가 지난 2004년 펴낸 소설 '졸혼을 권함'에서 유래했다. 한자 그대로 혼인을 졸업했다는 말이다. 부부가 법적 이혼 없이 각자의 삶을 살기 때문에 이혼이 아닌 화목한 별거에 가깝다. 이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은 최근 방송가의 가장 신선한 소재다. 예능이든 드라마든 실제 졸혼의 주인공을 등장시키거나 가상의 졸혼을 그리고 있다. KBS 2TV 예능프로그램 '살림하는 남자들2'는 실제 졸혼의 당사자가 등장한다. 아내에게 졸혼을 선언해 화제를 모은 바 있는 배우 백일섭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졸혼남의 싱글 라이프를 공개하고 있다. 강아지 제니와 살며 혼자 밥을 먹고 TV를 본다. 아들과 함께 여행을 가기도 하지만, 어찌됐든 그의 일상은 가족 보다는 자신이 중심이다. 가족에 얽매인 평범한 노년 가장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E채널 '별거가 별거냐'와 MBN '졸혼수업'은 부부의 가상 별거기를 담는다. '별거가 별거냐'는 '결혼에도 방학이 필요하다'는 슬로건 아래 실제 연예인 부부가 별거 생활을 통해 잊고 있던 자신의 꿈을 이룬다는 기획 의도로 시작됐다. 시즌 1으로 기대 이상의 화제를 모았고, 오는 9월 시즌 2 방송까지 확정지었다. '졸혼수업'도 비슷한 포맷이다. 제작진은 이 프로그램에 대해 "결혼 생활로 잠시 잊고 살았던 각자의 소중한 인생을 찾아보고 자신들만을 위한 새로운 부부관계를 만드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기획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두 프로그램 모두 남편 혹은 아내가 아닌, 자신을 중요시한다.
드라마에도 졸혼이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언급됐다. 지난 25일 방송된 KBS 2TV 주말극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강석우(차규택)는 아내 송옥숙(오복녀)에게 "우리 졸혼해"라고 말했다. "이혼하자는 거냐"는 송옥숙의 물음에 "결혼 생활 졸업하자. 결혼 생활 여기서 끝내자"고 강하게 선언했다. 극 중 강석우는 졸혼을 선언하기 전부터 은퇴 이후 가족 보다 애완견을 더 돌보며 살아가는 '전직 가장'으로 등장했다.
이젠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평범한 가족 형태인 1인 가구는 이제 중년의 기혼자들에겐 졸혼이라는 새로운 현상으로 나타났다. '한 번 뿐인 인생, 현재를 즐기겠다'는 욜로라이프(You Only Live Once)와도 의미가 상통한다. 변해가는 가족 형태와 라이프스타일이 곧 TV 트렌드가 된 셈이다.
이처럼 현실의 변화를 반영한 콘텐트의 목표는 결국 시청자와의 공감대 형성이다. '별거가 별거냐' 제작진은 "별거나 이혼 조장이 아닌 부부 행복 지수를 높이기 위해 특별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특히 기혼자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