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부산 사직구장에서는 롯데 조성환(38)의 은퇴식이 열렸다. 롯데-LG전을 앞두고 치른 행사에 그의 두 아들이 함께 했다. 장남 영준(11)군은 시구, 차남 예준(6)군은 시타에 나섰다. 롯데 포수 강민호는 시구를 받아 2루로 뿌렸다. 조성환은 자신이 지켜온 사직구장 2루 베이스에서 마지막 공을 받았다. 그런데 은퇴 기념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그의 아내 박안나(38)씨는 보이지 않았다. 관중석에서 남편의 은퇴식을 그저 말없이 지켜봤다.
조성환과 초등학교 동창인 박씨는 2001년 결혼 후 남편의 선수 생활을 묵묵히 뒷바라지했다. 14년 동안 언제 어디서든 함께 하며 늘 옆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은퇴 기념행사에서는 차마 남편의 옆에 서 있지 못했다. 먹먹한 마음을 추스를 뿐이었다. 경기 종료 후 본격적인 은퇴식이 열리자 박씨는 비로소 남편 옆에 섰다. 그리고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은퇴식이 끝나고 연락이 닿은 박씨는 "어쩌죠. 또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라며 울먹였다. 다음은 박안나씨와 일문일답.
- 남편의 은퇴식이 끝났다. 실감이 나는지.
"실감이라는 느낌은 없는 것 같다. 은퇴 발표 후 벌써 석 달이 지나서. 그동안 함께 한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이제는 많이 적응됐다."
- 은퇴를 결정했을 때 속상해했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황당했다. 은퇴 발표 뒤에는 '이 사람이 왜 지금 내 옆에 있나, 여기 있어야 할 사람이 아닌데' 싶었다. 시즌이 아직 한창 진행 중인데 옆에 있는 게 어색했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야구가 아닌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어떻게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다."
- 울음을 참는 모습이 TV 화면에 많이 잡혔다.
"아니다. 수건이 다 젖을 정도로 많이 울었다.(웃음) 옆에서 지인들이 울지 말라고 달래더라. 남편이 그라운드를 돌 때 마음이 너무 짠했다. 팬들께 감사드리고 싶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조명이 다 꺼진 뒤 휴대전화 플래시를 켜고 흔들어 주시는 모습에 정말 감동을 받았다. 팬들이 그렇게 해주시는 걸 보고 또 눈물이 났다. '남편이 팬들에게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구나'라는 걸 다시금 느꼈다."
- 14년 동안 한결 같이 내조를 했다. 기뻤던 순간을 꼽자면 언제인가.
"꼽기 어려울 정도로 기쁜 일이 많았다. 하지만 그래도 야구 선수는 야구를 잘해야 행복한 것 같다. 남편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 가족들도 기쁘다. 신랑이 좋은 성적을 냈을 때 팬들이 더 많이 응원해주시고 격려해주셨다. 지금도 감사하다."
- 반대로 힘든 시절도 있었을 것 같다.
"아무래도 남편이 야구를 하지 못했을 때 아닐까 싶다. 야구를 하지 못하고 어려운 시절을 보낼 때 힘들었다."
- 남편의 결정에 대부분 따른다고 들었다. 그래도 '이것만큼은 반대했다'는 걸 꼽자면.
"이번 은퇴는 반대했다. '올해까지 해보고 혹시 다른 팀에서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건 순전히 내 욕심이었다. 기회가 없어서 뛰지 못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다른 이유가 있었더라."
- 남편이 일간스포츠와 인터뷰에서 '몸이 따르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기사를 보고 알았다. 남편이 뒤늦게 이야기하더라. 신랑이 그 말을 딱 하는 순간 '아, 그러면 안되겠구나' 하고 순순히 따랐다. 공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걸 전혀 몰랐다. 남편이 집에서 워낙 야구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 야구장을 자주 찾지 않는다고 하던데.
"일년에 한 번 정도 갈까 싶다. 큰 아이가 어릴 때 야구장을 데려갔는데, 반응이 시큰둥했다. 관중석에서 아빠 경기는 보지 않고, 게임만 하길래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둘째는 다르다. 예준이 꿈이 강민호였다. 은퇴식 날에도 강민호 선수와 신나게 놀더라. 전에는 '커서 뭐가 될래'라고 물으면 '강민호가 되겠다'고 할 정도로 강민호 삼촌을 좋아했다. 그런데 지금은 '슈퍼맨이 되겠다'고 한다.(웃음)"
- 남편은 집에서 야구 이야기를 하지 않나.
"야구장에서 있었던 이야기, 자기 이야기를 잘 하지 않으려고 한다. 궁금한 걸 물어보면 그저 단답형으로 대답한다. 나 역시 잘 물어보지 않는 편이기도 하다. 때문에 다른 선수의 아내에게 건너건너 남편과 구단의 소식을 접하는 경우가 많았다."
- 그라운드와 집에서 차이가 있나.
"그라운드에서 후배들에게 하는 모습은 첫째를 키울 때와 비슷하다. 큰 아이를 조금 엄하게 키웠다. 둘째는 야구장에서 봤겠지만, 천방지축이다. 그래도 크게 개의치 않더라. 남편은 시간이 허락되는 한 아이들과 많이 놀아주려고 한다. 아이들에게 노력하는 아빠라고 할까. 늘 잘해주려고 한다."
- 아이들은 운동에 소질이 있나. 야구를 하겠다고 하면 찬성하겠는가.
"큰 아이는 또래에 비해 덩치가 남다르다. 그래서 '첫째는 운동을 해도 좋지 않을까' 싶었는데, 본인이 싫다고 한다. 아빠가 다치는 걸 직접 본 것이 트라우마가 된 것 같다. 다치는 게 싫다고 하더라. 운동을 친구들과 즐기면서 하는 건 좋지만, 프로 선수로서 직업으로서 하는 건 싫다고 한다. 본인이 싫다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 방송계에서 남편에 대한 관심이 높다.
"알고 있다. 남편은 TV 해설을 잘 할 것 같다. 본인이 좋다고 하면 나는 찬성이다. 신랑이 선택하는 것에 반대를 하지 않는 편이다. 늘 선택을 존중했다. 믿고 따라갈 뿐이다."
- 남편의 후배 선수들도 잘 챙기는 모습이다. 마치 '큰 누님' 같다.
"남편도 그랬지만, 선수들을 보면 안쓰럽다.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격려의 말을 많이 해준다. 선수들의 아내들도 고민이 있으면 다 나에게 털어놓는다. 어떻게 하다 보니 나에게 질문이 돌아오더라. 남편에게 농담으로 '나도 힘든데'라며 웃었다. 후배들의 아내가 나와 이야기를 해서 위안이 된다면 좋은 일 아닌가. 여자의 마음은 여자가 아니까. 보듬어 주려고 한다."
- 부창부수(夫唱婦隨) 인가.
"맞다. 그런 느낌이다.(웃음) 남편이 그런 경향이라 나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것 같다."
-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하자면.
"사랑하는 남편. 날 항상 아껴주고 위해주는 걸 느껴요. 신랑은 워낙 성실하고, 자기 할 일을 알아서 잘하니까 어떤 길을 가더라도 잘 할 거라 믿어요. 저는 뒤에서 열심히 응원할게요. 사랑해요. 팬 여러분께도 다시 한 번 감사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