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종오(39·kt)는 별명이 많다. 총을 너무 잘 쏴서 '사격황제' '사격의 신'으로 불리고, 나가는 경기마다 이긴다고 해서 '이긴 종오'라는 별명도 붙었다. 기록도 많다. 올림픽 사격 종목 사상 세계 최초로 단일 종목 3연패(2008 베이징·2012 런던·2016 리우) 달성, 올림픽 사격 종목 최다 금메달(4개) 보유자, 역대 올림픽 한국 선수단 최다 메달(6개·금메달 4개, 은메달 2개) 타이 기록 보유자 등 수많은 타이틀이 진종오라는 이름을 수식한다.
놀랍게도 이처럼 완벽한 '사격의 신'이 하나 갖지 못한 메달이 있다. 바로 아시안게임 개인전 금메달이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부터 태극마크를 달고 사대에 선 진종오는 2014 인천 아시안게임까지 네 번의 대회에 출전해 금메달 3개와 은메달 4개, 그리고 동메달 4개를 수확했다. 그러나 아시안게임에서 그가 따낸 3개의 금메달은 모두 단체전에서 가져온 것이고, 개인전에선 유독 금메달과 인연이 없었다. 이른바 '아시안게임 징크스'라 할만 하다.
하지만 진종오는 여전히 자신감이 넘쳤다. 24일 2018 국제사격연맹(ISSF) 창원 월드컵 대회가 열린 경남 창원국제사격장에서 만난 진종오는 "개인전 금메달이 없다고 욕심을 부리면 망할 것 같다"며 장난스레 웃었다. "응원해주시는 만큼 개인전 금메달을 획득하고 싶고, 또 메달을 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말문을 연 진종오는 "개인전 금메달이 없다는 걸 자꾸 부각시켜 주시는데, 그 징크스를 깨보도록 하겠다. 물론 부담은 있겠지만 올림픽도 치러봤고 인천 아시안게임도 나가봤기 때문에 이번에는 최대한 실수하지 않는 진종오를 보여드릴 것"이라고 자신있는 태도를 잃지 않았다.
진종오는 이날 치러진 이 대회 남자 10m 공기권총 예선에 번외경기로 참가했다. 빡빡했던 선발전 일정과 갈비뼈 부상 여파가 겹친 탓에 월드컵 선발전에서 1점 차이로 4위에 그치면서 대회 출전이 불발됐기 때문이다. "올해 초 체력을 키우려고 등산을 하다가 갈비뼈가 골절됐다. 부상 때문에 한 달간 훈련을 제대로 못했다고 핑계를 대고 싶다"고 얘기한 진종오는 "컨디션은 점점 더 올라오고 있다.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다음 월드컵에서 몸상태를 더욱 끌어올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비록 이번 월드컵에선 경기에 나서지 못했지만 그에겐 앞으로 중요한 대회가 잔뜩 남아있다. 오는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이어 8월 말부터 9월까지 창원세계사격선수권대회까지 굵직굵직한 대회가 연달아 열린다. 두 대회 모두 진종오에겐 나서는 의미가 크다. 아시안게임은 징크스를 깨기 위해, 세계선수권대회는 안방에서 열리는 대회이자 올림픽·아시안게임에서 폐지된 진종오의 주 종목 50m 권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올림픽에 이어 아시안게임까지 50m 권총이 폐지되면서 진종오는 큰 상실감을 느꼈다. "굉장히 기분이 나쁘다"고 거침없이 표현한 진종오는 "내가 가장 잘하고 준비해왔던 50m 권총이 없어졌다는 게 많이 속상했다. ISSF 임원으로 있으면서도 회의도 하기 싫고, 다 하기 싫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나는 은퇴 시기가 다가오니 괜찮지만 내 밑의 후배들은 어떻게 하나. 50m 권총 하나만 바라보고 있던 선수들인데 기회가 없어진 셈이 아닌가"라고 한탄한 진종오는 "그래도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선 50m 권총도 있고, (아시안게임에서 폐지된)단체전도 있다. 결선 없이 본선만 치르는 50m 권총인 만큼 세계선수권대회 때는 엄청나게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미소로 각오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