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로 만난 정지훈(32)은 한결 편안해 보인다. "연예계에서 나만큼 기복이 심한 사람도 없을 거"라며 씩 웃는 모습에서 그간 사건사고를 겪으며 쌓은 내공이 단번에 전해진다. 그는 SBS 새 수목극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이하 내그녀)'로 4년만에 드라마에 출연한다. 2010년 '도망자 플랜비' 이후 드라마 복귀작. 15일 기자간담회에서도 여유로운 그의 태도는 단연 눈에 띄었다. 후배들보다 더 열심히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세심하게 챙겼다. 간담회가 끝난 후에는 후배들을 이끌고 기자들과 저녁식사 자리까지 자청했다. "예전엔 누군가를 이겨보려 했다. 왜 그렇게 어리석었는지 모른다. 후배들에게 겸손하게 혹평을 받아들이라는 조언을 하곤한다."
'내그녀'에서 정지훈은 극중 연예기획사 대표이면서 작곡가로 출연한다. 사망한 옛연인의 동생(정수정)을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인물이다. 첫방송은 17일 오후 10시.
-4년만에 복귀다. 왜 '내그녀'를 선택했나.
"'내그녀'를 읽으면서 연예인이라는 직업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을 것이란 느낌이 확 들었다. 대중들은 연예인을 돈 많이 벌고 편한 직업처럼 본다. 이 드라마는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에 대해 굉장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공감이 많이 됐나.
"극중 김명수(엘)가 맡은 시우와 내가 아티스트-대표 관계다. 알다시피 소속 연예인과 기획사 대표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관계가 좋지 않은 게 일반적이다. 이런 것들이 사실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재밌더라. 그렇다고 내가 (박)진영이형과 사이가 안 좋은 것은 아니다.(웃음)"
-'내그녀'의 매력은.
"동화같은 착한 드라마다. 온 가족이 다 시청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대본을 읽어보면서 가장 좋았던 건 사람들 관계 속 갈등 구조가 심각하지 않다. 죽은 여자친구의 동생을 사랑하는 게 가장 큰 갈등일 뿐이다. 요즘 갈등 구조 수위가 높은 드라마 많지 않냐."
-파트너 정수정과 12세 차이다.
"수정이는 원래부터 좋아하는 아티스트였다. 12세 차이가 나지만 전혀 나이 차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나와 정신세계가 비슷하다.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수정이가 연기를 굉장히 잘한다는 점이다. '원래 순수한 친구였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사 톤이나 말투가 캐릭터와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본인은 겸손하게 아니라고 하지만 아마 시청자들도 드라마가 방영된 이후 수정이의 새로운 모습을 보지 않을까 싶다."
-오랜만에 국내 작품이라 부담될텐데.
"국내 드라마는 4년만이지만 중국서 영화 한 편 미국서 영화 한 편을 해 몸이 많이 풀린 상태다."
-작업 시스템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
"4년만에 돌아왔지만 촬영 현장은 늘 즐겁다. 지금껏 형·누나들과 작업하다가 이번에는 아버지로 나오는 박영규 선배님을 빼고 다 내 밑이다. 활동하기가 매우 편하다.(웃음) 예전엔 선배님들에게 물을 떠다 드렸지만 지금은 대접받는 위치다."
-특히 어떤 점이 신경쓰이나.
"이전까지 여러 작품에 출연하면서 대체적으로 자연스러운 연기를 했다면 이번에서 보다 더 대본에 충실한 연기를 해보려고 한다. 높은 톤의 목소리도 좀 더 낮춰보려고 발성 연습도 다시 하고 있다. 이번에는 30대 남자가 전하는 진한 멜로 연기를 선보이고 싶다."
-본인도 달라졌을텐데.
"예전에는 어떻게든 선배를 이겨보려고 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누구를 이겨보려는 태도를 버렸다. 후배들을 촬영장에 불러 하는 말이 있다. 가수 출신 연기자라고 주눅들 건 없지만 겸손할 필요는 있다고 말한다. 지금 당장 신인 연기자를 불러서 해보라고 해도 너희들처럼 못할거라고 말하면서 시청자들이 혹평을 하면 받아들이라고 한다. 마지막회가 방송될 즈음 많이 발전했다는 말을 듣고 뿌듯해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욕심을 버렸나.
"나처럼 기복이 심한 연예인도 없다. 이제는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길 원하지 않는다. 다만 튀지 않고 무난하게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다 가끔 기대하지 않았는데 잘하는 게 있으면 따뜻한 칭찬 정도는 받고 싶다."
-최근 천주교 세례를 받아 화제가 됐다.
"어머니가 천주교다. 또 일부에서 말한대로 여자친구(김태희)가 오래 전부터 성당을 다니고 있었다. 그러한 점들 때문에 성당에 다니게 된 거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정해진 예식을 따르고, 신부님 등 주위 신자들도 큰 움직임 없이 기도하는 모습들이 좋더라."
-참 구설에 많이 시달렸다.
"인생의 파도를 겪은 걸로 치면 연예계에서 싸이형 다음이 나다. 이젠 논란을 떠나 작품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가고 싶다.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의혹에 관한 기사는 계속 쏟아지는데 무죄 판결이나 대립했던 상대방들이 처벌받은 이야기는 잘 안 나온다. 언젠간 자연히 풀리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