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시즌에서는 두 팀 사령탑의 지략 대결도 관전 포인트다. 플레이오프(PO) 1차전에서도 예상과 다른 선수 기용이 관심을 모았다. 양상문 LG 감독이 순리를 바탕으로 실리를 추구했다면, 김경문 NC 감독은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문과 문의 대결. 사령탑의 선택은 얼마나 통했을까.
◇ 양의 선택 - 1차전 선발 투수 헨리 소사
양상문 감독은 20일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에이스 데이비드 허프 대신 소사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등판 간격이 길어지면 소사의 컨디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경기 전엔 전략 적인 이유도 전했다. 정규 시즌 종료 이후 2주 가까이 휴식한 NC 타선이 소사의 빠른 공 대처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것.
그 예측이 맞았다. NC 타자들은 3회까지 소사의 빠른 공 밀렸다. 외야로 날린 공은 많았지만 뻗지 않았다. 간판 타자 나성범은 1회 높은 코스 빠른 공에 배트를 헛돌렸다. 간간이 섞는 변화구엔 빗맞은 공이 내야로 향했다. 사실 소사의 변화구 제구력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슬라이더는 가운데로 몰렸고, 포크볼은 밋밋했다. 4회 말, 무사 1·3루에 놓이기도 했다.
하지만 위기에서 변화구가 날카로워졌고, 4번 타자 권희동을 삼진으로 잡은 뒤, 박석민에겐 내야 땅볼을 유도해 3루 주자를 누상에서 아웃시켰다. 조영훈에게 던진 슬라이더는 몰렸지만 타이밍이 안 맞았다. 소사는 이후 6회까지 무실점을 이어갔다. 7회 선두 타자 사구, 1사 후 다시 슬라이더가 높이 들어가며 안타를 맞은 뒤 마운드를 내려왔다. 하지만 구원 투수 정찬헌이 실점을 막아내며 포스트시즌 2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다.
◇ 양의 선택 - 정성훈 선발 출전
준PO에서 LG의 1루는 베테랑 정성훈이 아닌 양석환이 더 많이 지켰다. 하지만 이날 양상문 감독의 선택은 정성훈이었다. "경험이 많은 선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2년 전, NC전 준PO에서 1차전 선발 1번 타자로 나서 1회 초, 2루타를 치며 포문을 열었다. LG는 이병규(7번), 이진영의 적시타와 최경철의 3점 홈런에 힘입어 1회에만 6점을 올렸다. 포스트시즌에서 만난 NC전에서 좋은 기운을 갖고 있는 타자였다.
하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2회 초, 1사 1·2루에서 첫 타석에 나선 정성훈은 상대 선발 에릭 해커로부터 유격수 땅볼을 치며 더블플레이 빌미를 제공했다. 두 번째 타석이던 5회엔 1사 후 좌익수 뜬공으로 물러났다. 이 타석에서 나온 타구는 질이 매우 좋았다. 하지만 팀이 1-0으로 앞선 7회 2사에선 다시 유격수 땅볼로 물러났다.
◇ 김의 선택 - 4번 타자 권희동
NC는 음주 운전 징계로 1차전에 결장하는 에릭 테임즈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타순엔 권희동, 포지션엔 조영훈을 내세웠다. 권희동은 올해 군 전역을 해 9월에 합류한 선수다. 타율은 2할 6푼 대에 불과하지만 복귀 두 번째 경기던 마산 KIA전에서 5타점을 몰아치며 기세를 올렸다. 상대 사령탑 양상문 감독도 그가 4번 타자로 나선 것에 대해 크게 놀라지 않는 눈치였다. "시즌 후반 타격감이 좋았다"는 평가.
극적인 상황이 그 앞에 놓였다. NC는 4회 말 공격에서 나성범과 박민우가 연속 우전 안타를 치며 무사 1·3루 기회를 만들었다. 변화구 제구력이 흔들리던 소사가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권희동은 허무하게 물러났다. 앞 타석에서 잘 맞은 우측 뜬공을 치며 기대를 높였지만 볼 카운트 1-2에서 포크볼에 방망이를 헛돌렸다. 0의 행진이 이어지던 6회엔 2사 후 3구 삼진을 당했다. 투 스트라이크에서 던진 소사의 빠른 공이 바깥쪽(우타자 기준)에 들어찼다. 미동도 못한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어렵게 체면을 세웠다. 팀이 0-2으로 뒤진 채 맞은 9회 말 공격에서 무사 1루에 타서에 들어선 그는 상대 마무리투수 임정우를 상대로 좌전 안타를 때려내며 1, 3루 득점 기회를 만들었다. 권희동 카드가 마지막 순간에 빛을 발했다. NC는 이후 대타 지석훈이 팀의 첫 득점이자 1점 차로 추격하는 우전 적시타를 쳤다.
◇ 김의 선택 - 2번 타자 나성범
나성범은 9월 이후 출전한 32경기에서 타율 0.254를 기록했다. 반면 줄곧 테이블세터로 나서던 박민우는 같은 기간 4할이 넘었다. 김경문 감독은 이날 경기에서 나성범을 2번에 포진시켰다. 상대 사령탑은 "주자가 있을 때 나성범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했다.
나성범은 첫 타석에서 소사의 빠른 공에 삼진을 당했다. 하지만 두 번째 타석이던 4회엔 선두 타자 안타를 때려내 기회를 만들었다. 소사의 포크볼이 밋밋하게 떨어지자 잡아 당겨 우전 안타를 만들었다. 후속타 불발로 득점엔 실패했지만 중심 타선에 기회를 만드는 역할을 했다. 이후 6회엔 삼진을 당했다.
나성범의 전진배치는 결과적으로 중심 타선의 해결 능력 저하로 이어졌다. 앞서 언급했듯이 권희동은 선취점을 낼 수 있는 기회에서 기대에 못 미쳤다. 그의 해결 능력도 중요한 순간에는 나오지 못했다. LG가 7, 8회 루이스 히메네스와 정상호가 선두 타자 홈런을 치며 2-0으로 앞서갔다. 나성범은 8회 1사 1루에 타석에 들어서 정찬헌을 상대했다. 하지만 2루 땅볼에 그쳤고, 더블아웃을 당하고 말았다. 그의 2번 기용은 승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거나, 통하지 않았다.
◇ 마지막에 웃은 김경문 감독
이날 승부는 9회 말 갈렸다. LG가 승리 분위기를 굳혀가던 상황에서 NC가 상대 마무리 투수 임정우를 상대로 연속 3안타를 치며 1점 차로 추격했다. 무사 1, 3루에서 지석훈 대타 작전이 통했다. 테임즈의 자리를 대신한 조영훈은 이 상황에서도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김 감독의 뚝심도 엇나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선발 라인업에서 빼며 회심의 카드로 내세운 이호준이 바뀐 투수 김지용을 상대로 동점 적시타를 때려냈다.
상대의 만루 작전에 스퀴즈로 대응하는 등 결과를 앞둔 절정의 순간에 두 팀 사령탑의 지략 대결도 무르익었다. 그리고 승부는 김태군을 대신해 수비로 들어온 용덕한의 손에서 나왔다. 반드시 기대와 전략대로 만들어진 승리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