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FC 구단주인 이재명(50) 성남시장이 팀이 2부 리그(챌린지)로 떨어질 경우 내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글을 남겨 논란이 일고 있다.

성남은 23일 FA컵 결승에서 FC서울을 누르고 정상에 올랐다. FA컵 우승 팀에 주어지는 내년 챔피언스리그 출전권도 땄다. 이 시장은 28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FA컵 우승의 쾌거를 언급하며 "내년에 시 지원 예산은 물론 메인스폰서를 포함한 후원도 50억원 이상 충분히 확보해 1부 리그(클래식) 잔류시 내년부터 시민 구단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줄 수 있다. FA컵 우승에 따른 아시아챔피언스 리그(ACL)를 치르는데도 특별한 문제는 없을 뿐 아니라 해외 출전에 필요한 선수 보강과 해외 출전비 추가 마련도 적극 검토중이다"고 했다.

그러나 성남은 지금 FA컵 우승의 환희를 마냥 만끽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현재 10위인 성남은 강등 다툼을 벌이고 있다. 19일 부산과 최종전에서 승리하면 자력으로 1부에 남는다. 하지만 비기거나 패하면 같은 시간 벌어지는 경남-상주전 결과에 따라 11위로 떨어질 수도 있다. 11위는 챌린지 2위와 홈 앤드 어웨이의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한다. 여기서 이기면 1부에 남지만 패하면 2부행이다. 내년에는 2부 리그 팀이 챔피언스리그를 치르는 보기 드문 장면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 시장은 이런 상황에 대해 "성남FC가 2부 리그 탈락할 만큼 약체인데 우연히 FA컵 우승을 한 것일까 아니면 FA컵에 우승할 만큼 실력이 있지만 다른 이유로 탈락 위기에 처한 것일까요? 실력이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남은 실력이 있음에도 탈락 위기에 처한 것이 분명하다"고 의문을 품었다. 그러면서 그 원인을 "잘못된 경기 운영"으로 돌렸다. 구체적으로 오심으로 피해를 본 사례도 들었다. "오심으로 승점을 땄다면 강등은 안 당했을 것이다"며 "이 사례들 말고도 빽 없고 힘 없는 성남시민구단이 당한 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부정부패하고 불공정한 나라 운영이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는 것처럼 불공정하고 투명하지 못한 리그 운영은 축구계를 포함한 체육계를 망치는 주범입니다. 승부조작 등 부정행위가 얼마나 한국 체육계의 발전을 가로막았는지 실제로 경험했다"고 토로했다. 부산과 홈경기에서 패한 경기를 콕 짚어 "프로축구연맹 회장이자 부산 구단주인 정몽규 회장이 직관하는 가운데 역시나 부당하게 PK를 선언돼 경기 흐름이 끊기더니 지고 말았습니다"고까지 했다.

한 마디로 성남은 FA컵에서 우승할 정도로 실력있는 팀인데 오심으로 정규리그에서 강등 사투를 벌이는 처지가 됐다는 뜻이다. '불공정' '투명하지 못한' 승부조작' 등의 단어를 써가며 의도적으로 부당한 판정이 내려졌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정몽규 회장이 직관하는 가운데"라는 표현도 지나치다. 한 축구인은 "구단주가 할 말과 안 할 말도 구분 못하나. 이건 일종의 음모론이다. 더구나 강등 여부가 걸린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바람을 잡으려는 공갈과 협박 아니냐"고 분개했다. 당사자인 부산 관계자도 "우리 선수들이 지금 분기탱천해 있다"며 발끈했다.

K리그의 근간을 흔드는 발언일 뿐 아니라 부산 구단과 정몽규 회장 그리고 심판들에 대한 심각한 명예 훼손이다. 또한 이 시장이 경기인 출신이거나 축구계에 오래 몸담은 인물은 아니지만 명색 구단주인데도 축구에 대해 이렇게 무지하다는 사실도 놀랍다.

오심은 나와서는 안 된다. 오심 하나로 한 해 농사를 망치는 팀에게 뭐라 위로를 건넬 것인가. 성남이 오심으로 피해를 봤다면 구단주로서 얼마나 마음이 아플지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오심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세계 최고의 축구 대회라는 월드컵에서도 오심은 늘 나온다. 그래서 오심은 축구의 일부라는 말도 있다. 그 오심을 의도적이라 보는 삐뚤어진 시각이 더 큰 문제다. FA컵 우승 팀이 강등 다툼을 벌이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논리도 비상식적이다. 정규리그는 한 시즌 내내 벌어지는 장기레이스고 FA컵은 한 번 패하면 탈락하는 토너먼트 대회다. FA컵은 정규리그에 비해 이변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토너먼트의 묘미기도 하다. FA컵 우승 팀이 강등 다툼을 벌이는 상황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잘못됐거나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 시장의 마지막 발언이 압권이다.

그는 "대규모 예산 삭감과 후원취소로 구단규모를 줄이면서 ACL에 출전해야 하는 황당한 일이 실제 발생하면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실건가요?"라며 "선택지는 많지 않습니다. 대폭 축소된 선수진으로 출전을 강행해 핸드볼 경기 수준의 실점을 하며 나라 망신을 시키거나, 예산과 실력의 현실을 인정하고 출전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출전 포기를 시사하는 듯한 발언이다.

각 팀들은 FA컵 우승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성남 김학범 감독과 선수들도 어려운 환경에서 열세인 전력을 뒤집고 최선을 다해 트로피를 들었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드라마를 썼다. 그런 선수단을 향해 구단주가 '출전 포기'를 운운했다. 선수단이 흘린 피땀과 눈물 그리고 그들이 전해준 진한 감동을 한순간에 가루로 만들어버린 경솔한 처사다.

윤태석 기자 sportic@joongang.co.kr

◇ 이재명 성남FC 구단주의 페이스북 글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