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 팀 한화는 8-7로 앞선 9회말 2사 2루 동점 위기에 몰렸다. 타석에는 시즌 타율 0.275인 넥센 8번 타자 김하성, 마운드엔 최고 연봉의 마무리 정우람이 있었다. 이때 김성근 한화 감독은 벤치에서 고의4구 사인을 냈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9번 홍성갑은 정우람의 한가운데 초구 직구를 정확하게 때려 동점 우전 안타를 만들었다. 고의4구로 출루했던 김하성은 3루로 달렸고, 다음 타자 이택근 타석 때 나온 끝내기 폭투로 홈을 밟았다.
김성근 감독의 고의4구 지시는 논란의 주제가 되기에 충분하다. 동점이라면 몰라도 한 점 리드를 안고 있는 가운데 역전 주자를 내보내는 건 야구에서 금기다. 2·3루라면 어차피 역전 주자가 나가 있으며, 고의4구로 포스 아웃 플레이가 가능하다. 하지만 주자 2루다. 한 전직 감독은 “확실히 일반적인 지시는 아니다”고 했다.
드문 일이긴 하다. 2005~2015년 11시즌 동안 프로야구 경기는 6016회 열렸다. 이 중 원정 팀 투수가 1점 앞선 마지막 이닝 2사 주자 2루에서 고의4구를 기록한 경기는 딱 아홉 번 있었다. 5월 25일 고척돔 경기가 열 번째였다.
김하성은 지난해 신인왕 경쟁을 벌인 타자다. 반면 홍성갑은 동점타를 친 타석이 통산 1군 38번째였다. 아웃카운트 하나면 승리를 확정짓는 상황에서 좀 더 약한 타자를 상대하는 건 일견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역전 주자가 출루했다는 점은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통계적으로는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KBO리그 11년 데이터를 바탕으로 할 때 9회말 2사 2루에서 홈 팀 승리 확률은 15.6%다 상황이 1·2루라면 확률은 19.1%로 높아진다. 즉 타자의 능력이 같다면, 고의4구 작전은 ‘의도적으로’ 상대의 승리 확률을 3.1%p 높여주는 ‘이적 행위’다.
타자 변수를 집어넣으면 이렇게 된다. 올해 KBO리그는 경기당 5.2점이 난다. 기록상 홍성갑은 올해 득점 생산력이 리그 평균의 61.6% 정도인 타자다. 그래서 조건을 경기당 3.2점(5.2점*61.6%) 득점 환경으로 변환하면 2사 2루는 12.1%, 2사 1·2루는 15.7%다. 따라서 김하성 타석 때 넥센 승리 확률은 15.6%였고, 홍성갑 타석에서 15.7%로 0.1%p 늘어났다.
0.1%는 현장의 상황이나 직감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는 수치다. 그래서 김성근 감독의 고의4구 사인이 승부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건 아니다. 실제 지난 11시즌 동안 같은 상황에서 고의4구가 나온 9경기에서 모두 원정 팀이 이겼다. 애시당초 이런 상황에선 원정 팀의 마무리가 등판한다. 2루든, 1·2루든 아웃카운트 하나만 남겨놓고 있는 홈 팀은 여전히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따라서 거짓말 같은 역전패는 한화와 김 감독의 불운으로 해석할 수 있다. 누가 최고 마무리 정우람이 공 두 개를 던지며 동점 적시타와 끝내기 폭투를 기록할 줄 예상했을까. 김성근 감독의 승부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 하지만 상대를 다소나마 유리하게 했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해석해도 무의미한 작전이었다.
이게 김성근 감독의 문제다.
그는 선수를 어려운 환경에 몰아넣은 뒤 극복하기를 요구한다. “한계를 넘어라”라고 말한다. 그래서 선수에게 혹독한 훈련을 시킨다. 3연투, 4연투도 밥 먹듯 한다. 전쟁에 비유하면 병사를 사지로 몰아넣는 장수다. 좋은 결과를 낳을, 납득할 수 있는 어려움이라면 감수할 수 있다. 하지만 선수들이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는 게 지난해 시즌 중반 이후 한화가 겪고 있는 문제의 본질이다.
그리고 선수는 데이터대로만 움직이지 않는, 감정을 가진 살아있는 사람이다. 한 야구 관계자는 “정우람은 리그 최고의 마무리다. 그런데 8번 타자를 상대로 고의4구 작전이 나왔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9회말 고의4구 작전에서 김성근 감독을 위한 변명은 하나 더 마련할 수 있다. 정우람은 8회부터 등판해 공 35개를 던진 상태였다. 또다른 전직 감독은 “김성근 감독은 연장전에 들어가면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역전 주자 출루를 감수하고 타자 쪽에 집중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확실히 한화 불펜에는 연장전을 책임질 투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이유는 김성근 감독이 3회부터 줄줄이 구원 투수를 투입했기 때문이다. 감독의 실패를 선수들이 감수하고 있는 팀. 한화 이글스의 지금 자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