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말했다. 어렴풋이 읽힌 한 야구 선수의 진심이 뜨거운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넥센 외야수 홍성갑(24) 얘기다.
홍성갑의 25일 고척 한화전에서 '9회말 투아웃' 역전극의 주인공이 됐다. 7-8로 뒤진 2사 1·2루서 한화 소방수 정우람을 상대로 동점 적시타를 쳤다. 한화가 2사 2루서 김하성을 고의4구로 내보내 홍성갑에게 기회가 돌아왔다. 그때 대기 타석에 서 있던 그는 생각했다. '여기서 한 번 해보자.'
짐작은 했다. 그는 "심재학 타격코치께서 '분명히 한화가 하성이를 걸리고 너와 승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잘 됐다 싶어 준비를 했다"고 했다.
타석에 들어서기 직전, 주장 서건창도 다가왔다. "감독님이 '주눅들지 말고 자신있게 치라'고 하셨다. 잘 해봐라." 어깨에 든든한 힘이 실렸다.
정우람의 초구 직구를 주저 없이 받아쳤다. 안타였다. 1루로 질주하며 외야로 빠져나가는 타구를 바라봤다. 홍성갑은 자기도 모르게 외쳤다. "나도 할 수 있어!"
그 모습이 TV 중계 리플레이 화면에 잡혔다. 수많은 사람이 1루로 전력질주하던 그의 포효를 읽었다. 무명 선수에게 1군 한 타석이 얼마나 간절한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홍성갑은 26일 "정말 무의식적으로 나온 말이었다. 나도 내가 그런 말을 했는지 몰랐다. 돌이켜 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오래 품어왔던 믿음이 저절로 입 밖으로 튀어 나왔다. 그래도 그는 "다른 선수들도 그런 마음 아닐까. 나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2011년 넥센에 입단했다. 그러나 지난해까지 1군 성적은 2014년 2경기, 2015년 7경기가 전부였다. 올해 연봉은 3200만원이다. 5년 사이 고작 800만원이 올랐다.
그래도 올해는 빛이 보였다. 1군 스프링캠프에 처음 참가했고, 개막 엔트리에도 포함됐다. 벌써 20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유한준 선배가 이적하고 박병호 선배도 메이저리그로 갔다. 올해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 기대를 해 봤다"며 "기회를 완전히 잡지는 못하더라도, 최대한 내 역량을 보여줘야 할 것 같았다. 캠프 때부터 정말 준비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홍성갑은 안산에서 팀 선배 박정음과 함께 산다. "절박한 사람들끼리 같은 집에 있다"며 웃었다. 안산은 넥센 2군 구장이 있는 경기도 화성에서 가깝다. 그래서 그쪽에 집을 얻었다. 그런데 지금은 둘 다 1군에서 뛴다. 출근길이 예상보다 멀어졌지만, 불편해도 기분이 좋다. 둘 다 1군 붙박이 멤버가 돼 서울로 이사하면 좋겠다는 희망도 생겼다.
그는 "이 마음을 잊지 않고 계속 가겠다"고 했다. "25일 경기는 이제 잊고 매일 매일 다시 출발하겠다"고 강조했다.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하고, 안타 하나보다 표정 하나가 더 감동을 줄 수 있다. 그게 야구의 매력이다. 홍성갑이 무심코 외친 한 마디가 그 진리를 새삼 일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