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해프닝이라기엔 너무나도 어이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더욱이 심판진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경기를 속개하려 해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6일 안산 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19~2020 V리그 남자부 대한항공과 OK저축은행 전에서 지난 시즌 경기구를 사용한 것이 경기 도중 확인됐다. 1세트를 내준 대한항공의 베테랑 세터 유광우가 5-7로 뒤진 상황에서 서브하려다 심판진에게 문제를 제기했다. 유광우는 "공 색깔이 다른 공들과 다르다"고 항의했다.
잠시 중단된 경기는 곧 재개됐고, 한국배구연맹(KOVO)은 시간이 훌쩍 지나 4세트 시작 전에 "지난 시즌 경기구가 투입돼 사용됐다"고 잘못을 인정했다.
연맹에 따르면 경기구 제조업체가 경기마다 공을 홈 팀에 보내는데, 업체 측에서 보관하고 있던 지난 시즌 경기구를 전달한 것이다. 일단 공을 수령하면 구단 측이 고용한 코트 매니저와 장비 매니저가 경기구를 고르고 확인하는 작업을 거친다.
그래도 엄연히 심판진의 잘못이다. 연맹 관계자는 "세부 규정은 조금 다르지만, 대부분의 경기 운영에 관한 규정은 국제배구연맹(FIVB)의 룰을 적용해 따른다"고 밝혔다. FIVB 규칙 3(볼)-2항을 보면 '부심은 경기 시작 전 경기용 볼 5개를 보유하고 볼의 특성(색상, 둘레, 무게, 압력)이 동일한지 여부를 확인한다. 부심은 경기 내내 볼에 대한 책임을 진다'고 명시돼 있다. 심판진은 공기압 체크 등 확인 작업을 거쳐 사인을 한 뒤 경기에 사용한다.
문제는 지난 몇 년간 사용해온 경기구와 이번 시즌 경기구는 다르다는 점이다. 연맹은 2020년 도쿄 올림픽을 대비해 이번 시즌 경기구를 국제대회 공인구와 흡사하도록 바꿨다. 연맹에 따르면 "(지난 시즌 경기구와) 디자인과 제작 공법 등이 다르다"고 한다. 그렇다면 육안으로도 일부 확인이 가능하지만, 이를 제대로 체크하지 않았다는 의미밖에 안 된다. 사용돼선 안 될 '공인'되지 않은 공이 경기 내내 사용되는 촌극이 발생한 것이다.
각 구단 감독과 선수들은 컵 대회와 시즌 초반 '경기구 적응'을 중요한 숙제로 꼽았다. 결국 공에 작은 차이가 발생해도 민감하고 예민한 만큼, 이는 경기력과 승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다. 그래서 이번 사고를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심판진의 관리 소홀도 문제였으나 이에 대한 대응도 논란을 낳았다. 대한항공 측으로부터 문제 제기를 받은 대기심이 "(사용구 교체나 경기 중단 없이) 그냥 해"라고 말했다. TV 중계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 크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의미다.
V리그는 지난 시즌 최고 인기를 구가했고, 이번 시즌에는 더욱더 뜨거운 열기를 이어가고 있다. 8일 여자부 GS칼텍스와 흥국생명의 경기가 지상파 중계로 인해 오후 4시에서 황금 시간대인 오후 2시 15분으로 옮겨 치러진 점은 그 인기를 방증한다. 입석을 포함해 4200석 매진 사례를 이뤘다. 이럴수록 높은 인기에 취하지 않고, 기본을 망각해선 안 된다. 투명하고 프로다운 운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