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은 선수에게 그저 "더 이상 안 다쳤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선수의 야구 인생을 위해서다. 그러나 선수는 감독의 기대보다 더 큰 역할을 하고 싶어 한다. 스스로가 아니라 팀을 위해서다.
김기태 KIA 감독과 KIA 투수 한기주 얘기다.
한기주는 29일 광주 두산전에 선발 투수로 나서 5⅔이닝 5피안타 5볼넷 1실점으로 시즌 3승 째를 올렸다. 2006년 8월 3일 광주 두산전에서 7이닝(2실점)을 던진 이후 3557일 만에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 시즌 두 번째 선발 등판에서 얻은 또 하나의 이정표다.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극복'의 역사가 쓰여진다. 12일 인천 SK전에서 1462일 만에 승리 투수가 됐고, 15일 광주 넥센전에서는 1401일 만에 세이브를 따냈다. 23일 사직 롯데전에서는 5이닝 4실점으로 1668일 만에 선발승을 올렸다. 네 번의 수술을 거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이 엄청난 숫자들이 모두 보여준다. 그 사이 KIA는 광주 무등경기장 야구장에서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로 홈구장도 옮겼다.
29일은 한기주가 처음으로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선발 등판하는 날이었다. 그리고 그의 29번째 생일이기도 했다. 김 감독은 그 등판을 앞두고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부상이 가장 걱정이다. 아프지만 않으면 좋겠다. 그것만 바라고 있다"고 했다. 코칭스태프에게도 "한기주가 최대한 스트레스를 안 받게 해주라"고 당부했다. "팀 성적이 안 좋을 때 선발이라는 중책을 맡았으니 부담이 클 것 같다. 그래도 너무 마음의 짐을 느끼지 않기를 바란다"고 거듭 강조했다. 부모가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지켜보듯, 매 순간 안쓰럽고 걱정스럽다.
그러나 한기주의 마음은 달랐다. "팀이 어려운 순간일 때마다 선발 등판을 하게 됐지만, 매 이닝 중간 계투로 등판한 것처럼 던진다고 생각했다. 그게 좋은 결과로 연결된 것 같다"고 했다. 오랜 기간 비어 있던 자신의 자리. 이제 그 빈 칸을 채울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기쁘다. 그는 "지금 투수진 상황이 좋지 않은데 내가 좀 더 긴 이닝을 책임지지 못해 오히려 중간 투수들에게 미안하다. 현재 이탈해 있는 선발 투수들(윤석민, 임준혁)이 돌아올 때까지 내가 잘 버티고 싶다"고 했다. 지금이야말로 자신이 진짜 팀에 필요한 순간이라는, 단단한 책임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