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경기도 FA컵도 아니다. K리그 클래식(1부리그) 1위를 질주하는 '최강' 전북 현대와 한국 U-20 대표팀과 경기다. 두 팀은 26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사상 첫 대결을 펼친다.
신태용(47) U-20 대표팀 감독의 '간절한 부탁'과 최강희(58) 전북 감독의 '따뜻한 배려'로 만들어진 경기다. U-20 대표팀은 오는 5월 한국에서 개막하는 2017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 출전한다. 신태용팀은 5월 20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기니와 A조 1차전을 치른 뒤 23일 같은 장소에서 아르헨티나와 2차전을 펼친다. 3일 뒤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는 잉글랜드와 A조 최종전을 갖는다. 한국의 목표는 8강 이상이다.
대회를 앞서 강팀과 대결을 통해 내성을 키우고자 신 감독은 전북에 부탁했다. 리그 경기 준비로 바쁘지만 최 감독은 대승적 차원에서 이를 허락했다. 전북이 U-20 대표팀 월드컵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도와주겠다는 최 감독의 결정이었다.
결과는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이변이 없는 한 전북의 승리로 끝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기 내용에는 풍부한 스토리가 담겨 있다. 두 팀의 대결이 빅매치인 이유다.
◇ 전북을 괴롭히는 자가 월드컵 간다
신태용팀은 '최종엔트리' 경쟁이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
지난 14일 명지대(0-0 무)와 경기를 시작으로 19일 수원 FC(2-3 패), 24일 전주대(1-0 승)와 평가전을 치르며 옥석 가리기를 시도했다. 그리고 전북전이 최종엔트리가 발표되기 전 마지막 시험 무대다. 신 감독은 오는 29일 혹은 30일 월드컵 본선에서 함께할 최종엔트리 21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U-20 월드컵에 나선 팀들 중 전북보다 강한 팀은 없다. 즉 최강의 팀을 상대로 경쟁력을 보인 선수들을 월드컵으로 데려가겠다는 의중이다. 전북에 밀리지 않는 선수는 월드컵 본선에서 만나는 강팀 앞에서도 경쟁력이 있을 거라고 계산한 것이다.
전북전에는 소속팀 바르셀로나 후베닐 A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이승우(19)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승우는 24일 귀국해 곧바로 대표팀에 합류했다. 이승우의 경기력과 흐름을 전북전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지난 23일 전북과 포항 스틸러스의 클래식 7라운드가 펼쳐진 전주종합운동장에 신 감독을 비롯한 U-20 대표팀 선수들이 등장했다. 관중석 한편에 앉아 자신들이 상대할 전북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전북전이 단순한 평가전이 아니라는 것을 이들의 진지함에서 엿볼 수 있었다. 전북을 상대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야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을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한 눈빛이었다.
신 감독은 "전북은 한국 최고의 팀이다. 몇 수 위의 기량을 가진 팀이다. 우리가 질 가능성이 크다"며 "그렇지만 전북에 실컷 두들겨 맞더라도 얻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강팀에 대한 내성을 키워야 한다"고 전북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에이스' 백승호(20·바르셀로나 B) 역시 "전북전이 설렌다. K리그 최고의 팀이다. 배운다는 생각으로 임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도 "어떤 경기든 진다는 생각으로 임하지 않는다. 전북이라도 최선을 다해 뛸 것"이라고 승리 의지를 내비쳤다.
◇ 신태용과 최강희의 '무전기 기 싸움'
8년 전. 최강희 감독과 신태용 감독은 엄청난 기 싸움을 펼쳤다.
2009년 12월 최 감독의 전북과 신 감독의 성남 일화(현 성남 FC)가 2009 K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격돌했기 때문이다. 최 감독은 전북의 사상 첫 우승 영광을 노리고 있었고, 신 감독은 감독 데뷔 시즌 깜짝 우승을 바라봤다. 두 감독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기 싸움의 쟁점은 '무전기'였다.
신 감독은 인천 유나이티드와 6강 플레이오프에서 퇴장을 당해 준플레이오프 전남 드래곤즈전, 플레이오프 포항 스틸러스전까지 벤치에 앉지 못했다. 그가 택한 방법은 관중석에 올라가 무전기로 지시를 내리는 것이었다. 무전기는 통했다. 성남은 전남과 포항을 연이어 격파하며 챔피언결정전까지 올랐다. 이는 '무전기 매직'이라 불리며 큰 이슈를 불러 모았다.
무전기의 기운을 이어 가고자 신 감독은 2경기 출전 정지 징계가 끝나 벤치에 않을 수 있음에도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무전기를 들고 관중석으로 올라갔다. 전반 중반이 지나자 벤치로 내려와 앉았다.
이런 상황에 의견이 갈린 두 감독이 설전을 펼친 것이다. 신 감독은 "관중석에 올라가서 보는 것이 더 좋다. 위에서 보면 전북의 전술이 더 잘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자 최 감독은 "어쩔 수 없는 경우에나 하는 것이다. 감독은 당연히 벤치를 지켜야 한다. 위에서 본다고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휴대전화가 더 편하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두 감독의 신경전 속에 1차전은 0-0 무승부로 끝났다. 한 수 위 전력의 전북이 무승부를 거뒀으니 사실상 성남의 승리였다. 2차전에서 무전기 매직은 통하지 않았다. 전북이 3-1로 승리해 우승을 차지했다.
8년 뒤 다른 상황과 위치에서 만난 최 감독과 신 감독이 이번에는 어떤 모습으로 축구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길지, 이 역시 빅매치의 관전 포인트다.